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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영의 마니아썰]인공지능 골퍼와 뜨거운 용암

2016-03-11 02:17

▲로봇골퍼는인간의모든샷을모방할수는있지만감정이라는'뜨거운용암'을가슴속에품을수는없다.사진편집=박태성기자
▲로봇골퍼는인간의모든샷을모방할수는있지만감정이라는'뜨거운용암'을가슴속에품을수는없다.사진편집=박태성기자
‘2016년 3월 9일’. 역사는 ‘인류 대표’가 인공지능에게 첫 무릎을 꿇은 날로 기억할지 모른다. 첫날의 패배는 그럴 수도 있겠거니 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러나 희망이 허망함으로 변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딱 24시간. 잠시 허탈하고 정신이 멍했다. 이윽고 밀려오는 불안감.

한 달 전 일이 다시 오버랩 된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피닉스 오픈 프로암에서 한 로봇이 홀인원을 기록했다. 통상 아마추어 골퍼들의 홀인원 확률은 1만2000분의 1, 프로골퍼의 확률은 3000분의 1로 알려져 있다. 엘드릭은 그러나 단 다섯 번 만의 시도 끝에 성공했다. 그 로봇의 이름은 LDRIC(엘드릭)이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의 본명(엘드릭 톤트 우즈) 발음을 본 떠 지었다.

골프에서 처음 스윙 로봇이 개발된 건 1990년이다. 미국의 골프랩이라는 회사가 만들었다. 그들은 이제 26년 만에 인간을 흉내 내기에 이르렀다. 골프 로봇 ‘엘드릭’은 7.8마력의 힘을 가지고 있고, 최대 130마일의 스윙 스피드를 낼 수 있다. 물론 몇 가지 부품만 업그레이드한다면 스윙 스피드쯤이야 얼마든지 올릴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훅이나 슬라이스 등 각종 구질도 마음대로 구사한다. 세심한 손 감각이 요구되는 퍼팅도 가능하다. 로봇 골퍼 엘드릭은 인간의 모든 스윙을 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이미 갖췄다.

‘축구 천재’ 리오넬 메시의 황금발도 이미 3년 전 로봇에게 가로 막혔다. 로봇 골키퍼는 시속 130km가 넘는 메시의 슈팅을 3회 중 2회나 막았다. 단 한 번 성공시킨 슈팅도 로봇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찼기에 가능했다. 로봇의 팔만 늘린다면 역시 3대0 패배다.

‘두뇌 싸움’으로 불리는 야구에서도 인공지능의 활약이 시작됐다. 미국프로야구(MLB)는 지난해 ‘스탯캐스트(Statcast)’라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레이더 기술과 옵티컬 카메라 기술이 결합된 시스템이다. 야구공을 포함해 필드 위 모든 선수들의 움직임을 추적해 분석한다.

인간은 지구력, 순발력 등의 물리적 힘과 정확성, 연속성 등의 연산 능력에서 오래 전 컴퓨터에게 밀렸다. 이번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은 인간의 마지막 영역이라 여겨지던 ‘상상력’과 ‘창의력’에서도 인공지능에게 밀리게 됐다는 걸 의미한다. 대국을 받아들일 때만 해도 웃음기 넘쳤던 이세돌의 표정은 굳어졌다. 그의 표정은 인류 전체를 대변한다. 알파고는 단순히 계산만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학습을 통해 창의적인 수를 둔다는 걸 입증했다.

그래도 아직까지 인공지능에게 내어줄 수 없는 영역이 있다. 바로 감정이다. 슬픔, 분노, 좌절, 기쁨, 희열, 환희 등은 로봇이 흉내 낼 수 없다. 또 한 번 그렇게 믿고 싶다.

스포츠에 열광하는 건 단순히 어떤 선수나 구단이 뛰어난 기량을 뽐내서가 아니다. 불굴의 의지로 역경을 이겨내는 모습에서 희열을 느끼고 감동을 받고, 박수를 보내는 거다. 로봇 골퍼 엘드릭의 개발자는 “엘드릭의 페어웨이 안착률은 100%이고, 그린 적중률도 100%다. 우즈의 각종 기록을 갈아치울 수 있다”고 했다.

유러피언 투어와 골프랩이 기획했던 광고 캠페인인 ‘상상하는 모든 샷’(Every Shot Imaginable)도 현실이 될 수 있다. 로봇 골퍼는 2012년 버바 왓슨이 마스터스 두 번째 연장전에서 나무 사이로 날린 훅 샷을 식은 죽 먹듯 성공할 수 있을 것이고, 김세영이 지난해 롯데 챔피언십에서 보여준 두 번의 ‘기적의 샷’도 손쉽게 성공할지 모른다. 물론 그 전에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겠지만.

하지만 로봇은 우즈가 2008년 US오픈 최종 4라운드에서 다리를 절룩이면서도 마지막 18번홀에서 극적인 버디를 잡아내 이튿날 18홀 연장을 치르고, 여기서도 승부를 가리지 못해 서든데스를 치르며 우승했던 ‘91홀의 감동’을 재현할 수는 없다. HSBC 챔피언스 최종일 파5 18번홀, 3타 앞선 상황에서 그린을 직접 노린 장하나의 과감함 또는 무모함을 시도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악동’ 존 댈리는 경기 중 갤러리와 말싸움을 벌이기도 하고, 때론 그들을 향해 일부러 샷을 날리기도 한다. 마음대로 플레이가 되지 않으면 클럽을 물에 던져버리고 그대로 집으로 가 관계자들을 당혹스럽게 한다. 필드 밖에서는 음주와 도박 등으로 물의도 빚는다.

그럼에도 갤러리들은 여전히 댈리에게 열광한다. 그가 장타만 날려서가 아니다. 경기 중 여과 없이 표출하는 그의 기쁨, 분노, 좌절 등의 감정이 바로 우리네 삶과 닮아서다. 팬들은 날 것 그대로인 그의 모습을 보며 동질감을 느낀다.

로봇이 인공지능으로 무장하더라도 복잡미묘한 인간의 감정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터미네이터가 펄펄 끓는 용광로에서 최후를 맞듯 인공지능 로봇은 감정이라는 '뜨거운 용암'을 품으려다 스스로 오류를 일으켜 헤어나오지 못할지 모른다. 그게 인류의 마지막 희망사항이다. 로봇이 신(神)이 되는 세상은 상상만으로도 끔직하다.

김세영 마니아리포트 국장 freegolf@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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