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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말' 뒤에 '입말' 익힌 내 이름은 '로드스쿨러'"

다큐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청각장애인 부모 둔 비장애인 자녀 자기고백서

2015-04-01 06:00

다큐멘터리영화'반짝이는박수소리'의주인공인상국경희씨부부와두자녀.(이하사진=낭만회관제공)
다큐멘터리영화'반짝이는박수소리'의주인공인상국경희씨부부와두자녀.(이하사진=낭만회관제공)
청각장애를 지닌 까닭에 손으로 말하는 젊은 남녀가 있었다. 축구선수가 되고 싶던 청년 상국과 교사를 꿈꾸던 여인 경희는 곧 사랑에 빠진다. '장애'가 '장애'가 되는 한국 사회에서 둘은 꿈을 이룰 수 없었다. 그래서 청년은 목수가, 숙녀는 미싱사가 된다.

상국과 경희는 곧 부부의 연을 맺었고, 예쁘고 건강한 딸과 아들을 얻게 된다. 그렇게 목소리로도, 손으로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두 꼬마는 손으로만 말할 수 있는 부모 밑에서 자라게 된다.

두 아이는 '손말'을 먼저, '입말'을 나중에 배웠다. 두 가지 대화법을 아는 덕일까, 아이들은 그 누구보다 빠르게 어른들의 표현법을 알아갔다. 그렇게 두 아이는 듣지 못하는 엄마, 아빠의 통역사로서 세상과 이른 소통을 하게 된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흘러 고등학교 1학년이 된 딸 보라가 갑작스레 학교를 자퇴하고 인도 여행을 선언한다. 중학생 아들 광희도 보편·정형이라는 궤도를 벗어나 대안학교를 택한다.

도대체 이 가족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청각장애를 지닌 부모와 비장애인 자녀들의 특별한 소통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감독 이길보라, 제작 낭만회관)가 다음달 23일 개봉한다.

이 영화 속 들리지 않는 세상에 사는 아빠 상국과 엄마 경희의 세상은 고요하다. 들리는 세상에 태어난 딸 보라와 아들 광희는 이 두 세계를 오가며 살아 왔다. 부부는 남들과는 조금 다른 집안에서 자란 딸과 아들이 밖에서도 아무 탈 없이 지내길 바랄 뿐이다.

아빠 상국의 꿈은 넓은 정원이 있는 집을 장만하는 것이다. 하지만 땅을 보러 갈 때도, 부동산에서 가격을 물어볼 때도 모두 아들 광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 부부와 세상 사이에는 언제나 딸과 아들이 있었던 것이다.

◇ 수화로 옹알이…부모와 세상 연결하는 통로 역할

"'손말' 뒤에 '입말' 익힌 내 이름은 '로드스쿨러'"
청각장애인 부모 밑에서 자란 딸 보라와 아들 광희는 수화를 모어로 익히며 자라 왔다. 그렇게 수화로 옹알이를 했던 둘은 부모와 수화로 소통했다.

보라와 광희는 집밖의 들리는 세상과 만나게 되면서 부모와 세상을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자연스레 하게 됐다. 외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사람처럼 두 아이가 수화로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그렇게 보라와 광희는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대신해 은행에 전화를 걸고, 부동산에 연락해 이사 갈 집의 보증금이 얼마인지 알아봤다. 그들이 누구보다 빨리 어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두 아이가 겪은 들리지 않는 세상과 들리는 세상 사이에는 언제나 공존과 충돌이 뒤범벅돼 있었다. 가족의 행복한 모습 뒤에 똬리를 튼 구성원의 방황과 고민까지 영화 속에 담아낸 것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들리지는 않지만 행복한 상국 경희 부부와 누구보다 빨리 어른이 돼야 했던 보라 광희 남매의 특별한 소통에 집중한다.

이를 통해 장애인은 불행할 것이라는 편견에서 과감히 벗어나는 한편, 불통에 시달리는 현대 사회에서 마음으로 소통하는 이들의 특별한 울림을 길어 올린다.

◇ 나이 스물여섯 이길보라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

이길보라감독
이길보라감독
벌써 눈치챈 이들도 있겠지만, 다큐멘터리 반짝이는 박수 소리를 연출한 이길보라 감독과 극중 딸 보라는 동일인물이다. 이 영화는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인 셈이다.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 즉 청각장애인을 부모로 둔 비장애인 자녀라는 가정 환경과 열여덟 살에 여행을 다닌 경험을 토대로 '로드스쿨러'(Road-schooler)라는 책을 내고 영화까지 만든 그녀다.

올해로 스물여섯 살인 이길보라 감독에게 반짝이는 박수 소리는 장편 데뷔작이다.

그는 자신과 부모를 향한 세상 사람들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항상 또래보다 먼저 생각해야 했고, 이를 정리해 글로 남겼다. 그 연장선에서 탄생한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가 20대 젊은 세대의 담담하고도 진지한 고민을 고스란히 담아낸 이유다.

그는 부모의 입과 귀가 되기 위해 일찍 철이 들었단다. 무엇보다 장애인 자녀로서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강권하는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고 감독은 전한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뭐든 열심히 하는 모범생이었던 그녀는 고등학교 입학 1년 뒤 학교를 자퇴하고 당당히 로드스쿨러의 길을 선택한다. 그렇게 열여덟 살에 홀로 8개월 동안 인도 등 아시아 8개국을 여행하며 책을 쓰고 영화를 찍었다.

그리고 열아홉 살이 된 이길보라 감독은 첫 중편 다큐멘터리 '로드스쿨러'를 통해 제7회 대한민국청소년미디어대전 관객상, 제2회 대전독립영화제 장려상을 받으며 연출력을 인정받는다.

그의 장편 데뷔작인 반짝이는 박수 소리 역시 지난해 여성인권영화제 관객상, 장애인영화제 대상,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다큐멘터리 옥랑문화상 관객상을 수상하면서 작품성을 인정 받았다.

이 영화는 장애인 소재의 다큐멘터리에서 쉽게 봐 온 고난과 역경 대신 가족의 꾸밈없는 모습으로 자기 고백서 같은 새로운 시선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지녔다.CBS노컷뉴스 이진욱 기자 jinuk@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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