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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 설렘도 섹시도 실종된 19금 신데렐라 스토리

박스오피스 4위 저조한 기록…신데렐라 스토리와 19금 설정까지 매력 잃어

2015-03-05 13:46

'그레이', 설렘도 섹시도 실종된 19금 신데렐라 스토리
미국 20주 연속 베스트셀러 1위, 전세계 1억 부 판매, 북미 박스오피스 1위. 원작부터 영화까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기록은 그 어느 작품보다 빛난다.

그런데 이 영화가 유독 한국에서는 저조한 기록에 시달리고 있다. 개봉 전 기대감은 높았지만 개봉 첫 주부터 4위에 머물며 좀처럼 맥을 추지 못하고 있는 것. 영화보다는 팝스타 비욘세의 몽환적인 OST가 더 화제를 몰고 있는 모양새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매력 키워드는 크게 두 가지다. 신데렐라 스토리와 'BDSM'(Bondage, Discipline·Dominance, Submission·Sadism, Masochism의 약자. 순서대로 구속, 훈육·지배, 굴복·가학증, 피학증 등의 네 가지 성적 지향). 문제는 이것들 중 어느 하나 국내 관객들을 시원하게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

영화'그레이의50가지그림자'스틸컷.(공식홈페이지캡처)
영화'그레이의50가지그림자'스틸컷.(공식홈페이지캡처)
일찍이 국내 관객들은 재벌남과 평범한 여성의 로맨스에 눈을 떴다. 각종 드라마와 영화는 성격적 결함이 있는 재벌남을 주인공으로 내세웠고 그 짝으로 평범한 서민여성을 점지했다.

막강한 소비자층인 여성들의 판타지를 구현하기에는 그만한 설정이 없었다. 오히려 최근에는 이 같은 설정이 식상하게 취급돼, 변형과 탈피가 이뤄지고 있다.

그만큼, 대한민국 신데렐라 스토리의 역사는 유구한 것이다. 나름대로 수준 높은 신데렐라 스토리를 향유해 온 이들의 시선에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그것은 세련되지 못하며, 엉성하고 단조롭다.

첫눈에 반하는 시작부터 관계만 원하는 남자와 사랑을 원하는 여자 사이의 계약과 '밀당'(밀고 당기기)까지. 이제는 찾아보기도 힘든 클리셰들이 재벌남 크리스찬 그레이(제이미 도넌 분)와 순수한 여대생 아나스타샤 스틸(다코타 존슨 분)의 로맨스를 구성한다.

물론 클리셰라도 납득 가능하게, 매력적으로 풀어나갔다면 얼마든지 '클래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급격한 관계 진전 속에서 인과관계는 힘을 잃고, 결국 아나스타샤 스틸의 신데렐라 스토리는 설렘을 주기 어려워진다. 심지어 아나스타샤 스틸이 갈수록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로맨스의 진정성까지 위기에 처한다.

여기에 2000년대 초반 인터넷 소설 같은 대사와 재력를 뽐내는 크리스찬 그레이의 모습이 오글거림을 더한다. 스크린 속 커플은 뜨겁지만 정작 그 열정이 잘 전달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한다.

영화'그레이의50가지그림자'스틸컷.(공식홈페이지캡처)
영화'그레이의50가지그림자'스틸컷.(공식홈페이지캡처)
그렇다면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만의 독특한 19금 설정은 어떨까. 이 역시 기대만큼 매력적이지 못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많은 자극적 수식어들이 있어도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본질은 트라우마를 가진 재벌남과 순수한 여대생이 함께 진정한 사랑을 찾아나가는 이야기다. 오로지 계약으로만 관계를 맺는 남자와 사랑을 꿈꾸는 여자는 서로 끌리면서도 갈등을 반복한다. 두 사람이 생각하는 사랑의 형태가 너무도 다른 탓이다.

이 과정에서 크리스찬 그레이의 남다른 성적 취향이 드러난다. 'BDSM'으로 대표되는 그의 취향 때문에 영화는 19금 로맨스라는 호칭을 얻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물은 19금 로맨스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관객들은 영화가 어떻게 'BDSM'을 표현해내고, 얼마나 섹시할 것인가에 기대감을 걸고 있었다. 그런데 소프트한 'BDSM'으로 이뤄지는 이들의 베드신은 아름답지만 향기가 없다.

일단 주인공들의 감정이 제대로 전이되지 않은 까닭이 크다. 베드신은 이들의 감정이 차곡차곡 쌓여 폭발하는 클라이맥스라, 공감이 되지 않으면 그 절정을 느끼기 힘들 수밖에 없다.

섹시하지 않은 'BDSM' 베드신도 한 몫 했다. 행위만 있을 뿐, 가학자와 피학자의 관계가 실감나게 표현되지 않아 겉핥기식에 그쳤다.

아직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게 기회는 남아 있다.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고, 충분히 이후 시리즈에서 원작의 매력을 잘 풀어나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좀 더 발전한 로맨스로 무장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미래를 기대해본다.CBS노컷뉴스 유원정 기자 ywj2014@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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