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큰 걸림돌은 역설적이게도 이들이 전성기를 보냈던 친정팀 롯데 자이언츠를 떠났다는 사실에 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영구결번은 단순한 성적의 합산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한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팬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끝까지 자리를 지킨 '순혈주의'와 '충성심'이 핵심 가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롯데의 영구결번인 최동원(11번)과 이대호(10번)가 가졌던 상징성을 고려하면, 전성기 도중 FA를 통해 라이벌 팀이나 인근 구단으로 둥지를 옮긴 선택은 영구결번 논의에서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밖에 없다.
손아섭의 경우 NC 다이노스 이적 후에도 꾸준한 타격 능력을 과시하며 마침내 박용택의 기록을 넘어 통산 최다 안타 금자탑을 쌓았다. 기록만 놓고 보면 이견이 없는 '명예의 전당' 0순위다. 그러나 롯데 팬들에게 그는 '우리 팀의 레전드'에서 '상대 팀의 에이스'로 변모했고, NC 입장에서는 팀의 역사적 순간을 함께하고는 있으나 커리어의 뿌리가 롯데에 있다는 점이 발목을 잡는다. 두 구단 중 어느 쪽도 선뜻 그의 번호를 영구결번으로 지정하기에는 명분이 분산되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강민호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롯데에서 14시즌을 보내며 리그 최고 포수로 군림했지만,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한 뒤 벌써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삼성에서 제2의 전성기를 누리며 팀의 최고참 리더로서 공헌하고 있으나, 삼성이 배출한 이만수, 양준혁, 이승엽 같은 '성골 레전드'들과 비교하면 이적생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특히 우승 반지라는 마지막 퍼즐이 빠져 있는 점도 영구결번의 문턱을 높이는 요소다.
결국 두 선수의 사례는 현대 야구에서 '기록'과 '상징'이 충돌하는 지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선수 생활의 이동이 잦아진 FA 시대에 한 팀에 뼈를 묻는 원클럽맨의 가치는 더욱 귀해졌고, 구단들은 영구결번 기준을 더욱 엄격하게 적용하는 추세다. 손아섭과 강민호가 남긴 숫자는 영원히 기록지에 남겠지만, 그들의 등번호가 부산이나 대구, 혹은 창원의 담장에 걸리기 위해서는 기록을 넘어선 강력한 '서사'가 필요해 보인다.
지금처럼 기록의 행진이 계속된다면, 특정 구단의 영구결번보다는 KBO 리그 전체 차원에서의 예우나 향후 설립될 명예의 전당 헌액이 더 현실적인 대안으로 거론될 전망이다. 위대한 기록을 남기고도 소속팀의 경계에서 서성이는 두 전설의 행보가 향후 영구결번 문화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강해영 마니아타임즈 기자/hae2023@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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