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14(일)

야구

[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632] 북한 야구에선 왜 '야수(野手)'를 '자리지기'라고 말할까

2025-12-14 08:54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야구장에 나타난 북한 전력 분석원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야구장에 나타난 북한 전력 분석원 [연합뉴스 자료사진]
야구 용어 ‘야수(野手)’는 일본식 한자어이다. 일본은 일본은 메이지 시기 미국 야구를 수용하면서 영어 ‘fielder’를 ‘들 야(野)’와 ‘손 수(手)’를 결합해 야수라는 한자로 명명했다. ‘field’를 ‘들판(野)’으로 옮기고, 그곳에서 플레이하는 사람을 ‘손(手)’으로 표현한 것이다. (본 코너 3회 ‘‘야구(野球)’는 낭만적인 문학적 표현이다‘, 14회 ’‘선수(選手)’에 ‘손 수(手)’자가 들어간 까닭은‘ 참조)

영어 ‘field’ 어원은 고대 영어 ‘feld’에서 왔고, 이는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인도유럽 공통어(PIE) ‘pele’ 등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어근의 핵심 의미는 ‘넓게 퍼지다, 평평하게 펼쳐지다이다. 폴 딕슨 야구사전에 따르면 ‘field1845년 미국 야구 규칙이 처음 만들어질 대부터 사용됐다. ’fielder’1859년부터 필드에서 뛰는 선수라는 의미로 처음 썼다.

우리나라는 야수라는 말을 일제 강점기부터 일본의 영향을 받아 사용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의하면 조선일보 1924년 11월8일자 ‘대야구전(大野球戰)과 배재진용(培材陣容) 조선일(朝鮮一)의빠테리’ 기사는 ‘기보(旣報)=고려대배재대야구전(高麗對培材大野球戰)은내십일(來十日)부터 그장쾌(壯快)한막(幕)을열터인바 적막(寂寞)하든금년(今年)가을조선구계(朝鮮球界)의마지막으로 맛치일본(日本)의삼전도문전(三田稻門戰)의그것으로볼만한터임으로만도(滿都)『펜』의 가슴을죠리어기다리는바이다 전조선(全朝鮮)의사계명성(斯界名星)들로 망라(網羅)된 고려(高麗)템의연일맹연습(連日猛鍊習)은기보(旣報)한바어니와 이에대전(對戰)할 배재고보군(培材高普軍)은 전의용씨감독(全義鎔氏監督)아래 몃날을압둔 축구대회(蹴球大會)도헤이리지안코『나인』들의맹렬(猛烈)한 연습(鍊習)은 필승(必勝)을기(期)하기에어렵지안타 지난여름 일본대회(日本大會)에 출전(出戰)할 예선(豫選)이잇슨이래(以來)쉬이든 동(同)템은 자유(自由)롭게 묘기(妙技)를 발(發)하는『카부』의신(神),정용준군(丁龍俊君)을 투수(投手)로하고 포수(捕手)의 거성(巨星)으로 견수맹타자함용화군(堅守猛打者咸龍華君)을 포수(捕手)로하얏스며 배재명투수(培材名投手)로 정평(定評)잇든백 기주군(白基珠君)을 유격(遊擊)에세워그민활(敏活)한묘기(妙技)를보이게되얏스며 강타자이영민군(强打者李榮敏君)을 삼루(三壘)에두고 백발백중(百發百中)의화형(花形)『챰표』김낙현군(金洛顯君)을 좌익(左翼)에세웟고 외야중진(外野重鎭)의 박정근군(朴正根君)을중견(中堅)에두어 내외야수(內外野手)에 모다견고(堅固)한 템을조직(組織)하얏슴으로 이번『께임』은 한번볼가치(價値)가잇다 배재군(培材軍)의진용(陣容)은이하(如下) 정용준(丁龍俊)(투수(投手))함용화(咸龍華)(포수(捕手))최재음(崔載蔭)(일루(一壘))김상윤(金尙潤)(이루(二壘))이영민(李榮敏)(삼루(三壘))백기주(白基珠)(유격(遊擊))김낙현(金洛顯)(좌익(左翼))박정근(朴正根)(중견(中堅))한홍이(韓弘伊)(우익(右翼))조태순(趙泰淳)(보결(補缺))’라고 전했다.

이 기사는 고려대(당시 고려전문학교)와 배재고보 야구전 예고 기사로 오늘날과 동일한 개념으로 내외야수(內外野手)라는 단어를 사용해 야수(野手) 개념이 확립돼 있음을 보여주었다.

북한에선 야수를 ‘자리지기’라고 부른다. ‘자리지기’는 말 그대로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다. 공을 잡는 기술보다 먼저 강조되는 것은 자신에게 부여된 위치다. 야구에서 수비는 타구를 쫓아가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각 포지션이 책임지는 공간을 통제하는 일이다. 북한식 표현은 이 가운데 후자를 전면에 내세운다. 수비수를 ‘공을 처리하는 선수’가 아니라 ‘배치된 자리를 지키는 존재’로 정의한 것이다.

이런 용어 선택은 북한 스포츠 전반에 깔린 집단주의적 사고와 맞닿아 있다. 선수는 자유롭게 판단하는 개인이라기보다, 팀이라는 조직 속에서 맡은 기능을 수행하는 구성원이다. 야구 수비는 개인의 센스와 반사 신경보다 ‘누가 어느 자리를 책임지는가’의 문제로 이해된다. 자리지기는 그래서 단순한 수비수가 아니라,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자다.

‘지기’라는 말이 지닌 전통적 뉘앙스도 흥미롭다. 문지기, 산지기, 마을지기처럼 ‘지기’는 공동체의 공간과 규칙을 지키는 사람을 뜻한다. 북한은 이 전통적인 한국어 감각을 스포츠 용어에 끌어들였다. 야구장은 전장이나 무대가 아니라, 각자가 자리를 지켜야 하는 공동의 작업 공간이 된다.

북한이 외래 스포츠 용어를 고유어로 바꾸는 과정에서도 같은 원리가 작동한다. 인터셉트는 ‘끊기’, 프리킥은 ‘벌차기’, 미드필더는 ‘중간선 선수’가 된다. 모두 화려함보다는 기능 설명에 충실하다. 자리지기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외국에서 들여온 야구를 북한식 언어와 사고로 재구성한 결과다. (본 코너 1600회 ‘사회주의 관점으로 본 북한 스포츠 언어’ 참조)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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