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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902] 왜 ‘테니스코트의 맹세’라고 말할까

2023-02-12 07:01

프랑스 화가 자크루이 다비드의 '테니스 코트의 맹서'
프랑스 화가 자크루이 다비드의 '테니스 코트의 맹서'
테니스가 프랑스 혁명의 진원지가 됐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이다. 원래 테니스는 프랑스에서 중세 시대에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귀족 운동이었다. 프랑스 귀족 가문에서 ‘죄드폼(Jeu de Paume)’이라는 공놀이를 했었는데, 이를 테니스의 기원으로 보고 있다. 죄드폼은 직역하면 ‘손바닥 놀이’라는 뜻이다. 공을 손바닥으로 쳐서 상대편에게 보내는 놀이다. 일종의 핸드볼이었으며, 성직자들은 교회나 수도원 안뜰에서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본 코너 902회 ‘왜 ‘테니스’라 말할까‘ 참조)

‘테니스 코트의 맹세’는 프랑스 혁명을 촉발시킨 대표적인 역사적 사건이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테니스 코트의 맹세’는 프랑스어로 ‘Serment du Jeu de paume(죄드폼의 맹세)’, 영어로 ‘Tennis Court Oath(테니스코트 서약)’ 라고 말한다. 정확히 말하면 죄드폼이라는 경기장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현대 테니스는 죄드폼이 발전해 영국에서 규격화해 만들어졌다.

‘테니스 코트의 맹세’는 1789년 6월20일, 프랑스 왕국의 구체제에 반발한 삼부회의 제3신분(평민) 의원들이 국민 의회를 선언, 정부가 이를 진압하기 위해 의회장을 폐쇄하자 의원들이 베르사유 궁전 인근 테니스 코트로 장소를 옮겨 헌법 제정을 요구한 사건이다. 프랑스 혁명을 촉발한 중요한 사건으로 꼽힌다. 이 실내 테니스코트는 베르사유 궁전을 지을 무렵인 1686년 함께 만들어졌다.

1789년 5월 삼부회에서 평민계급 의원들은 계급별 투표에 반대하며, 삼부회의 영국식 의회 개편과 헌법 제정 등을 주장해 귀족, 성직자 계급 의원들과 협상을 벌였다. 그러나 대다수의 귀족, 성직자 계급 의원들은 이에 반대했다. 6월 19일, 평민계급 의원들은 라파예트, 미라보 백작, 시에예스 등의 소수의 귀족과 성직자 계급 의원들이 평민계급의 주장에 동조함에 따라 단독으로 삼부회를 국민의회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루이 16세가 국민의회를 반대하여 군대를 동원해 삼부회 회의장을 폐쇄하고 국민의회를 해산하려 들었다. 이에 맞서 평민계급 의원들과 국민의회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므늬 플레지르 궁의 테니스코트로 가서 대응책을 논의했다. 논의 과정에서 혁명을 일으키자는 등의 과격한 주장들도 있었으나 결국 "헌법이 제정될 때까지 국민의회는 물러서지 않겠다"라고 선언하고 초대 의장으로 천문학자인 장 실뱅 바이이를 선출했다.

이 사건 이후 대세는 국민의회 쪽으로 기울게 되었고 결국 루이 16세는 어쩔 수 없이 국민의회를 인정하고 헌법제정위원회를 만드는 것을 용인하게 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루이 16세는 프랑스군을 파리로 보내게 되고, 결국 이것이 프랑스 혁명의 시작이 됐다.


장소 섭외 문제로 인해 우왕좌왕하고 있을때 이 테니스 코트를 소개하고 열쇠까지 가져온 사람은 바로 단두대의 어원이 된 '기요탱' 박사이다. 귀족임에도 불구하고 혁명을 지지한 그는 당초 단두대에서 처형된 것으로 잘못 알려졌다. 나폴레옹 정권 때까지 잘 살다가 자연사했다.

‘테니스 코트의 맹세’라는 역사적 사실을 통해 테니스가 유럽에서 오랜 전통과 역사를 거쳐 세계화된 종목으로 자리잡았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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