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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462] 왜 세터(Setter)를 '컨트롤 타워(Control Tower)'라고 말할까

2021-08-12 07:20

도쿄올림픽에서 한국여자배구가 공격을 성공시킨 뒤 환호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 끝이 주전세터 염혜선. [국제배구연맹 홈페이지 캡처]
도쿄올림픽에서 한국여자배구가 공격을 성공시킨 뒤 환호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 끝이 주전세터 염혜선. [국제배구연맹 홈페이지 캡처]
2020 도쿄올림픽에서 극적인 4강 신화를 이뤄낸 한국여자배구 대표팀 주전 세터 염혜선(30)은 부상투혼을 발휘하며 경기를 이끌었다. 올림픽 한 달 전까지도 그는 세터 자리를 놓고 주전 경쟁을 벌여야 했다. 지난 2월 오른손 손가락 골절로 일찌감치 시즌을 끝냈다. 손가락 2개 상태가 정상을 회복하지 못해 뼈를 고정하는 핀도 제거하지 않은 상태였다. ‘학교 폭력’논란으로 국가대표 자격이 박탈된 이다영(25)의 빈 자리를 채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따라붙었다. 하지만 손가락 8개만으로 볼을 배급하며 김연경 등 공격수들에게 결정률 높은 공격을 하도록 유도하며 4강을 이끌었다. 이번 대회 총 223개의 세트(토스)를 성공시켜 이 부문 4위에 올랐다. 한일전에서 풀세트 접전 끄에 극적인 승리를 거둔 후엔 “주전 세터로 일본에 처음 이겨봤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세터는 배구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포지션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선수에게 공을 전달해 공격을 이끄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농구 포인트 가드, 미식축구 쿼터백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세터는 공격의 시작 역할을 하기 때문에 어느 선수에게 어떤 공을 줄지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방 블로킹을 파악하고 세트를 해야 하기 때문에 판단력이 뛰어나야 하고 강한 정신력을 갖춰야 한다. 세터가 흔들리면 팀 전체 플레이에 영향을 줄 수 있고 경기 전체 흐름이 뒤바뀔 수 있다. ‘배구는 세터 놀음’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어 세터(Setter)는 사전적 의미로 ‘어떤 문제를 설정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시험문제를 출제하는 사람을 세터라고 말한다. 또 개품종인 ‘잉글리시 세터’, ‘고든 세터’ , ‘아이리시 세터’ 등에도 세터라는 말을 붙여 쓴다. 붉고 긴 부드럽고 매끄러운 털을 가진 세터는 사냥기술이 뛰어나고 열정적인 특징이 있다. 13세기 중세 영어에서 처음 세터라는 말을 사용했다. 배구에서 공을 올려준다는 의미인 세트를 하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세터라는 말을 쓰게 됐던 것으로 보인다. (본 코너 455회 ‘토스(Toss)는 일본식 영어, 세트(Set)가 정확한 영어 표현이다’ 참조)

세터는 두 번째 터치된 볼을 처리해 공격하기 쉬운 플레이로 만든다. 공격을 지시하고 빠른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에 의사 소통기술이 뛰어나야 한다. 대개 세터는 팀에서 키가 작고 볼 센스가 있는 선수가 맡는다. 수비전문 리베로와 함께 다른 공격수들보다 체구가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다. 한국 남자배구에서 최고의 세터로 평가받는 김호철은 1m80도 안되는 작은 키로 절묘한 볼배합을 구사하며 1970-80년대 세계 최고의 프로리그인 이탈리아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세터는 팀내에서 소통능력이 가장 뛰어난 선수이기도 하다. 상대방 팀이 서브를 넣을 때 세터들이 코트 반대로 서서 동료 선수들을 향해 손가락 사인으로 지시를 내린다. 오픈, 속공, 시간차 공격 등의 공격 패턴을 동료 선수들과 사전에 정한 손가락 사인으로 정한다. 세터는 상대방의 블로커를 미리 읽어내고 가장 약한 부분을 공략하기 위해 사전에 팀플레이 사인을 정하는 것이다. 야구에서 포수가 투수에게 보내는 방식과 비슷하다. 세터를 팀 감독과 비슷하다고 해서 ‘컨트롤 타워’라고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터는 전위나 후위에서 플레이를 하게 되면 수비에도 가담해야 한다. 서브를 받아내고 때에 따라서는 기습적인 공격도 한다. 팀에 따라서는 세트능력이 뛰어난 2명을 내세워 ‘더블 세터’를 운영하기도 한다. ‘더블 세터’는 다양한 공격으로 결정율 높은 팀플레이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전문적인 팀훈련이 돼어 있지 않으면 팀전술에 혼선을 주는 단점도 있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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