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체육 100년100인100장면} 24. ‘프로레슬링은 쇼다’의 진실

이신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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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0-09-21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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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11월 27일 장충체육관. 5개국 친선 프로레슬링 대회 마지막 날 김일의 파이널에 앞서 세미파이널 경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링 위의 선수는 우리나라의 장영철과 일본의 오쿠마. 두 선수는 1승1패를 주고받으며 3번째 판을 벌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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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철의 우세가 점쳐진 경기였으나 장은 의외로 고전하고 있었다. 그때 오쿠마가 보스턴 크랩을 장영철에게 시전했다. 일명 새우꺾기로 제대로 걸리면 그 누구도 빠져나올 수 없었고 오쿠마의 기술은 완벽하게 걸렸다.

주심은 허리가 꺾일 지경에 이른 장영철에게 수차례 항복할 것인가고 물었으나 장영철은 얼굴이 일그러지고 온몸이 뒤틀어지는 고통으로 비명을 내지르면서도 절대 항복의사를 표시하지 않았다. 큰 부상을 입을 것이 뻔했지만 일본의 중상급 선수에게 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오쿠마는 그 이전 천규덕에게 패한 선수여서 한국을 대표하는 장영철로선 죽어도 져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만약 패했다가는 국내파 선수들의 설 자리가 없어질 판이었다.

이래저래 절체절명의 순간, 링사이드가 어지러워지더니 장영철의 제자들이 한꺼번에 링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들은 공격을 가하고 있던 오쿠마를 밀어제치는 등 폭행을 가했다. 경기장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고 경기 역시 바로 중단되었다.

오쿠마는 링 난입에 대해 고소했다. 일반적으로 링에서의 일은 링에서 끝나는 법인데 오쿠마는 이례적으로 고소했고 장영철과 링 난입의 레슬러들은 폭행치상죄 혐의로 연행되었다.

다음날 아침 조간신문은 경찰조사 과정에서 밝혀진 장영철의 진술을 바탕으로 ‘프로 레슬링은 쇼’라고 보도했고 국민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일로 장영철은 오랫동안 배신자라는 오명을 썼으며 국민들은 점차 프로레슬링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장영철은 ‘프로레슬링은 쇼’라는 말을 입 밖에도 꺼내지 않았다. 다만 비슷한 진술을 했고 프로레슬링의 속사정을 몰랐던 경찰이 한 발짝 더 나갔고 사건 담당 기자들이 또 한 발짝 더 나가 ‘쇼’라는 단정적인 단어를 사용,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번져 간 것이었다.

쇼라는 제목이 의외로 쉽게 받아들여진 것은 전부터 프로레슬링은 짜고 한다는 소문이 무성했기 때문이었다. 권투는 한 경기를 하고나면 한 달을 쉬거나 챔피언들의 방어전인 경우는 적어도 2~3개월의 텀이 있다.

그런데 프로레슬링은 훨씬 더 격하게 움직이고 경기 중 부상으로 피범벅이 되었음에도 다음 날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또 경기에 나서고 뻔히 보이는 공격도 어떨 땐 전혀 피하지 않고 있다가 결정적 일 때 한 순간에 그것을 뒤집는 기술을 구사하여 경기를 역전시키니 충분히 의심을 살만했다.

장영철은 두가지 면에서 그날의 사건을 진술했다.

한 가지는 프로레슬링 나름의 약속된 룰 이야기였다. 프로레슬링은 격한 운동으로 자칫 잘못하면 큰 부상을 입을 수 있다. 그래서 평소 훈련을 철저히 하지만 막상 경기에 나서면 지나치게 몰입,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때문에 사전에 여러 가지 룰을 정하는데 새우꺾기의 경우 제대로 걸리면 풀지 못하므로 그 기술에 걸리면 알아서 기권의사를 표시해야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기술을 건 선수가 스스로 풀어 다른 동작으로 넘어간다는 것이 선수들 간에 이루어진 약속이다.

장영철이 위험한 상황임에도 항복을 하지 않은 이유는 오쿠마가 그 기술을 곧 풀것이라고 생각했기 떼문이었다. 사전에 이미 입을 맞춘 것이었는데 오쿠마가 치명적인 부상을 입힐 요량인지 압박을 가함으로써 약속을 어겼다고 강조했다.

또 한 가지는 느닷없이 폭행죄를 뒤집어쓰게 된 제자들을 위한 비호 발언이었다. 폭행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위해 링 난입 역시 사전 각본에 있었던 것이었으므로 폭행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설명을 했다.

‘프로레슬링은 각본대로 하는데 오쿠마가 룰을 어기고 너무 심하게 공격을 했다’는 것이 진술요지. 장영철이 강조한 것은 오쿠마가 룰을 어겼다는 점이었지만 프로레슬링에 정통하지 못했던 경찰은 각본이라는 말에 초점을 맞추었다.

각본에 의한 것이라면 원래 ‘짜고 하는것’이냐고 반문했고 각본이라는 말에 여러 가지가 포함되어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설명하자니 말이 길어지고 앞뒤가 맞지 않는 난처한 상황이었다. 이것이 ‘짜고 하는 것’이면 ‘결국 쇼가 아니냐’로 과대포장 된 것인데 경찰 진술이라는 사실까지 합해져 기정사실화 되고 말았다.

결국 링의 폭행은 더 이상 커지지 않았고 장영철의 제자 레슬러들도 바로 석방되었지만 프로레슬링은 큰 상처를 입었으며 국내 프로레슬링을 주도했던 장영철과 김일도 위축되었다. 장영철은 배신자라는 오명을 썼고 김일은 장영철을 꺾기위해 오쿠마를 내세운 장본인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장영철을 위시한 국내파들은 이 사건후 입지가 현저하게 좁아졌지만 김일은 그 후로도 한동안 인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프로레슬링은 더 이상 ‘민족의 한과 아픔을 달래주던 민족스포츠’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서서히 무대 뒤편으로 사라져갔다.

[이신재 마니아리포트 기자/20manc@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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