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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 스토리]대한민국 체육100년 100인 100장면 ⓷4전5기 홍수환

2020-07-20 07:14

7전8기는 불굴의 정신을 강조한 4자 성어다. 하지만 ‘그 날’이후 우리나라에선 4전5기로 바뀌었고 지금도 꽤 많은 젊은 사람들이 4전5기가 원조인줄 알고 있다.

1977년 11월27일 파나마의 파나마시티. WBA 주니어페더급 챔피언 타이틀전이 열렸다. 챔피언은 ‘지옥에서 온 악마’ 라는 링네임의 강펀치 소유자. 그는 패배를 모르는 11전11전승 11KO승의 쇠주먹으로 파나마의 보물이었다.

[마니아 스토리]대한민국 체육100년 100인 100장면 ⓷4전5기 홍수환


챔피언결정전. 대한민국의 홍수환. 이미 정점을 찍은 홍수환의 강적은 파나마 카라스키야였다. 홍수환도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1974년 7월3일 남아공 더반에서 벌어진 원정경기에서 아놀드 테일러를 꺾고 WBA 밴텀급 챔피언에 오른 실력파였다. 2차 방어전에서 멕시코의 알론소 사모라에게 KO로 무너졌고 그와의 리턴매치에서도 12회 TKO로 졌지만 테크닉은 당대 최고였다.


홍수환은 재기전을 겸해 프로 첫 2체급 석권을 노렸지만 승리에 대한 기대치는 그리 놓지 않았다.

막상막하의 1회전. 홍수환은 한 치 물러섬 없이 챔피언을 윽박질렀다. 탐색전이라는 게 없었다. 전운이 감도는 2회. 카라스키야의 맹공이 시작되었다. 칼바람을 날리는 그의 주먹에 홍수환이 나가 떨어졌다. 이내 일어섰지만 다시 다운, 그리고 또 다운.

보통의 경기였다면 한 라운드 세 번 다운이어서 KO로 끝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경기는 무제한 다운제였다. 몇 번을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면 시합을 이어 갈 수 있었다. 홍수환은 세 번째 다운치곤 가볍게 일어섰다.


그렇지만 카라스키야의 스쳐가는 주먹에 또 쓰러졌다. 4번째 다운이었다. 다행히 라운드가 끝나 KO패는 면했지만 승산은 없었다.

링으로 돌아가는 두 사람의 얼굴에는 곤혹감이 스쳐 지나갔다. 홍수환은 네 번의 다운이 믿기지 않았다. 카라야스키는 자기 주먹을 맞고 네 번 다운된 선수가 또 일어난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어찌보면 카라스키야의 당혹감이 더 컸다. ‘내 주먹이 약해 진 것인가’라는 의심을 품을 정도였으니까. 홍수환의 네 번째 다운은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충격이 없지는 않았지만 쓰러져서 시간을 벌겠다는 속셈이 있었다. 링으로 돌아가면서 다짐했다. 이렇게 된 거, 죽기살기로 해서 일찍 끝내자.

그날은 마침 일요일이고 구경거리가 별로 없었던 시절이어서 많은 국민들이 TV앞에 앉아있었다. 그러나 4번씩이나 다운되는 걸 보고 대부분 TV앞을 떠났다. 3회가 시작되었지만 역전을 기대하지 않았던 그때 엄청난 반전이 일어났다.

홍수환은 마치 다운 된 적이 없었던 선수처럼 맹공을 가했고 펀치를 맞고 로프에 비스듬히 기대어 쓰러진 카라스키야에게 마지막 주먹을 들이댔다. 다른 경기에선 로프다운을 인정했으나 이 경기는 그마저도 채택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완전히 쓰러질 때 까지 싸우는 지옥의 사생결단 매치였다.

[마니아 스토리]대한민국 체육100년 100인 100장면 ⓷4전5기 홍수환


홍수환의 그 한방에 카라스키야는 그대로 미끄러졌고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4번 쓰러진 후 다시 일어서서 뒤집은 4전5기의 피날레였다. 세계 복싱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명승부로 홍수환의 이 경기를 통해 ‘포기하지 말자’ ‘하면 된다’는 말이 인구에 회자되었다.

경제개발5개년 계획을 추진하고 있던 정부가 국민들에게 던지고 싶은 메시지였다. 홍수환은 김포에서 시청 앞까지 겨울 찬바람을 맞으며 카퍼레이드를 벌였다. 남아공 더반에서 외쳤던 홍수환의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와 이때의 4전5기는 한동안 대한민국 인기어가 되었고 프로복싱은 재미와 감동과 희망을 주는 대한민국 최고의 스포츠가 되었다.

[이신재 마니아리포트 기자/news@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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