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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손자병법] 29 글러브 내동댕이친 구대성과 홈10연패 한화의 전화위복(轉禍爲福)

2020-06-09 06:38

[-화가 오히려 복이 되다. 화를 당해도 적극적으로 대처하면 기회가 된다.

[프로야구 손자병법] 29 글러브 내동댕이친 구대성과 홈10연패 한화의 전화위복(轉禍爲福)


“아니 그게 어떻게 볼입니까”

구대성이 화를 못 참고 항의했지만 주심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1999년 5월 21일 대전 구장 9회초. 3-2로 이기고 있었으나 2사 만루에 볼카운트는 스리 볼 투 스트라이크. 한방이면 승패의 추가 바뀌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구대성은 전혀 개의치 않고 승부구를 뿌렸다. 약간 낮은 듯 했지만 홈플레이트 가운데를 통과하는 공이었다.

포수미트에 빨려 들어가는 공을 보며 구대성은 어깨를 으쓱하며 마운드에서 내려섰다. 스트라이크 그리고 게임 끝이었으니까. 하지만 덕 아웃으로 향하려던 구대성은 그 자리에 멈칫 서고 말았다. 이영재 주심은 아무렇지도 않게 볼을 선언했다.

밀어내기 동점. 순간 화가 폭발한 구대성은 글러브를 집어던졌다. 괘씸죄. 주심은 구대성에게 즉각 퇴장 명령을 내렸다. 마운드를 내려오던 구대성은 내동댕이 쳐져있는 글러브를 냅다 걷어찼다.

한화 벤치에서 감독, 코치가 뛰쳐나오고 선수들까지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게 어디 볼이고 투수는 왜 퇴장시키느냐며 난리를 피웠지만 이미 내려진 퇴장 명령은 거두어지지 않았다. 한바탕 법석을 떤 끝에 7분여 후 다시 경기가 시작되었으나 기가 빠진 한화는 속절없이 패했다. 홈구장 10연패였다.

“심판이 형편없는 녀석이야. 틀림없이 스트라이크인데 말이야”

분을 삭이지 못하고 벤치에서 씩씩거리고 있던 이희수 감독은 그라운드를 빠져 나가는 이영재 주심에게 쫒아가 귀싸대기를 날렸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던 그는 심판실까지 가서 몸싸움을 하며 거칠게 항의했다. “구대성의 6구째 공이 인코스로 빠졌다면 인정할 수 있지만 낮지는 않았다”며 심판을 몰아세웠다.

게임에도 지고 든든한 소방수는 퇴장당하고. 억울하기 그지없었지만 일은 더 커졌다. KBO가 심판을 폭행한 이희수 감독에게 12경기 출장 정지를 내렸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한화 그룹은 구단주 명의로 신문에 공개사과까지 했다. 그날 패배로 2위 LG에게 7게임이나 뒤진 한화의 앞날은 불을 보듯 뻔했다. 힘을 모아 진군해도 어려운 판인데 감독까지 경기에 못 나서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첩첩산중이었다.

한화는 급히 코칭 스태프진을 개편, 난국에 대비했다. 수석코치인 유승안을 감독 대행, 이정훈을 타격 코치로 앉혔다. 그리고 투수 코치인 계형철에게 마운드 운영 전권을 주었다. 계형철 코치는 1승에 무리하지 않고 긴 호흡으로 승부를 펼쳤다.

급전직하였던 투수력이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각 전담코치가 일을 분업화하면서 분위기도 달라졌다.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위기에 봉착한 선수들은 전에 없이 똘똘 뭉치며 팀워크를 다져 나갔다. 그래도 한화의 상승세를 점치는 전문가는 없었다.

하지만 감독이 없는 12경기에서 한화는 이전보다 더 나은 성적을 올렸다. 이희수 감독은 돌아와서도 코치 분업 시스템을 그대로 시행했다. 6월 초순의 고비를 잘 넘기게 되자 ‘충청도의 힘’이 살아났다.

7, 8월의 무더위 속에서 오히려 치고 나갔다. 그리고 9월 엄청난 뒷심을 발휘하며 연승행진을 하더니 기어코 LG를 밀어내고 매직리그 2위로 올라섰다. 전체적인 승률로 보면 ‘턱걸이 4위’였지만 5월의 화를 복으로 둔갑시킨 한화였기에 가을야구에선 무서운 게 없었다.

플레이오프전에서 드림리그 1위이며 전체 승률 1위인 두산을 4전패로 거칠게 몰아세우며 한치의 머뭇거림 없이 한국시리즈에 올랐다. 정민철이 1차전과 4차전, 송진우가 2차전 선발로 나섰다. 이상목이 선발로 나선 3차전은 장종훈이 만루 홈런을 터뜨려 승기를 잡았다.

한국시리즈에선 정민철이 1차전과 4차전, 송진우가 2차전과 5차전에 선발로 나서 롯데를 윽박질렀다. 이들이 나선 4경기를 모두 이긴 한화는 4승1패의 우세한 전적으로 창단 14년 만에 처음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한용덕이 계투요원으로 짬짬히 나서기도 했던 이 해의 가을야구에서 시즌 중 성질을 부려 화를 불렀지만 결과적으로 팀의 힘을 한데 모은 구대성은 플레이오프 4경기에서 1구원승 2세이브, 한국시리즈 5경기에서 1구원승 1패 3세이브를 기록했다. 팀의 9경기 중 1경기만 빼고 다 출전했고 한 번 빼고 모두 승리를 지켰다.

[이신재 마니아리포트 기자/news@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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