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손자병법] 11 선동열. 유지홍의 생사지교

이신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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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0-03-20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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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손자병법] 11 선동열. 유지홍의 생사지교
-생사를 같이 갈 정도로 친한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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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만 먹고 사냐. 우리도 좀 먹고 살자. 친구 좋다는 게 뭐냐. 하나쯤 줘라”

“니가 우리 연봉을 얼마나 말아먹는지 아냐. 너 때문에 타율 다 까먹고 있다. 10타수 무안타가 말이나 되냐. 체면만 좀 살려주라”

12월의 서울 한 술집. 고대 동기생들은 선동열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마구 씹고 있었다. 선동열이 등판하는 경기마다 죽을 쑤니 원망이 쌓일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몇몇은 괜찮았다. 주전 자리를 꿰차고 있으니 선동열 때문에 못 살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고려대 재학 시절 선동열과 돈독한 우정을 쌓았던 유지홍은 달랐다. 붙박이 주전도 아닌 터에 묘하게 선동열을 자주 마주쳤다. 안타는 고사하고 공을 제대로 맞추지도 못해 삼진이 수두룩했다.

대타로 나섰다가 삼진을 당하면 다음에 나설 기회가 줄어드니 죽을 맛이었다. 유지홍은 다음에 만날 때 사정 좀 봐달라고 했다. 취기가 오른 다른 대학 동창들까지 이구동성으로 매달렸다.

“좋다. 앞으로 내가 웃옷 깃을 잡으면 무조건 직구 스트라이크다”

대단히 위력적인 선동열의 공, 코스를 알려줘도 제대로 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것은 동창들에게 횡재수였다.

‘짧은 겨울’이 지나고 시작된 새 시즌. LG전에 선발 등판한 선동열은 유지홍이 타석에 서자 술집에서의 약속이 떠올랐다. ‘그래 한번 던져주자.’ 선동열은 옷깃을 슬쩍 잡아챘다.


안타 한 개쯤이야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볼 스피드를 약간 줄인 채 가운데 직구를 던졌다. 그 겨울의 약속을 잊지 않았던 유지홍도 기쁘게 직구를 맞이했다.

방망이가 가볍게 돌아갔다. 맞는 소리가 유난히 경쾌했다. 정확하게 방망이 한 가운데를 맞은 공은 훨훨 날아 그대로 담장을 넘어갔다.

“안돼, 홈런은...” 선동열이 깜짝 놀라 속으로 외쳤지만 한 번 넘어간 무정한 공은 돌아올 줄 몰랐다. 3년 동안 단 1개의 홈런도 없었던 유지홍이 천하의 선동열에게 홈런을 빼앗은 것이었다.

포수 장채근이 눈치를 채고 ‘잘들 해 보라’고 비아냥 거렸다. 그 역시 ‘우정의 특혜’를 받은 바 있었으니 왜 모르겠는가.

제로섬 게임인 프로 스포츠. 상대를 눌러야 자기가 잘 살 수 있는 비정한 무대. 그래도 사람 사는 정은 있게 마련이나 그것도 오래 전 이야기. 프로 세월이 쌓이면서 썩 달라졌다. 많이 살벌하고 삭막하다.

[이신재 마니아리포트 기자/news@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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