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영의 마니아썰]몰입의 차이

김세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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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16-06-21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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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 여자 선수의 아버지를 만났을 때의 일이다. 그는 자신의 딸에게 박세리와 친하게 지내라고 권한다고 했다.

“박세리의 연장전 기록이 어떤지 아세요? 6전6승이에요. 그건 단순히 실력의 차이가 아니라고 봐요. 아무리 실력 좋은 선수도 연장전에 나가면 떨리게 돼 있어요. 그러다 보면 한 번쯤은 질 수 있잖아요. 그런데 박세리는 그러지 않았어요. 우리 딸이 그걸 배웠으면 해요.”

그 비결이 궁금했다. 그래서 지난해 박세리를 만났을 때 ‘연장불패’의 비결에 대해 물었다. TV 맛집 프로그램에 단골로 등장하는 장면처럼 ‘며느리에게도 보여줄 수 없다는 특급 비법’을 기대했다.

“비결이랄 거 없는데요. 연장에 나갈 때는 어차피 그 선수나 저나 1등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단, 같은 1등이지만 제가 트로피를 가져가느냐 못 가져가느냐의 차이죠. 연장 출발에 앞서 ‘네가 이기든 내가 이기든 같은 1등이지만, 기왕이면 내가 가져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티샷을 하고 나면 전부 잊어버리죠. 이후부터는 매 순간 샷만 생각하는 거예요. 다음 샷도 생각하지 않아요. 성격의 영향도 크죠.”

그땐 그저 그런 대답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마이어 클래식에 우승한 김세영과 US오픈 정상에 오른 더스틴 존슨을 보며 생각을 바꿨다. 별 뜻 없어 보이는 그 말 속에 답이 있었다. 바로 몰입의 차이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고, 프로 선수라면 누구나 다 그 순간에 몰입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몰입의 깊이에 차이가 있는 거다.

LPGA 통산 5승 중 3승을 연장전에서 거둔 김세영은 우승 후 연장전에 나가는 줄도 몰랐다고 했다. 경기 내내 스코어를 보지 않아서였다. 마지막 홀에서 보기를 범한 탓에 연장에 끌려간 상황이었기에 심리적으로 밀릴 수도 있었지만 김세영은 러프에서 친 두 번째 샷을 홀 1m 거리에 붙이며 승부를 쉽게(?) 끝냈다.

김세영은 사실 이번 대회가 아니라 지난 3월 파운더스컵 때부터 리더보드를 보지 않으려고 했다. 시즌 개막전 준우승, 그 다음 대회인 코츠 챔피언십에서 공동 3위에 올랐지만 다음 두 대회에서 공동 48위, 공동 34위로 부진한 게 계기였다.

파운더스컵에서 ‘전설’ 아니카 소렌스탐이 세운 최다 언더파와 타이기록(27언더파)을 세우며 정상에 올랐던 그는 “매 홀 새롭게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경기에 임하고, 앞일을 예상하지 않기 위해 리더보드를 보지 않는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물론 매 대회가 자신의 뜻대로 되는 건 아니다. 파운더스컵 이후 4개 대회에서 두 차례나 컷 탈락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몰입과 샷 감각이 딱 맞아떨어질 때면 어김없이 드라마 같은 우승 스토리를 써낸다. 그 중 지난해 롯데 챔피언십 최종일 마지막 홀에서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가는 칩샷이 가장 극적이었다.

제116회 US오픈에서 생애 첫 메이저 트로피를 들어 올린 존슨은 경기 도중 나중에 벌타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통보를 받았다. 메이저 대회 최종 라운드에서 우승 경쟁을 펼치는 선수에게 경기위원회의 그런 조치는 엄청남 심적 동요를 일으킬 수 있다.

더구나 존슨은 2010년 PGA 챔피언십에서도 우승을 다투다 땅에 클럽을 댄 것 때문에 벌타를 받은 기억이 있다. 경기위원회가 황무지 같은 땅을 벙커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연장에 가지 못했다. 지난해 US오픈에서는 최종 라운드 마지막 홀에서 3.5m 거리의 이글 퍼트를 놓치고, 3퍼트를 범하는 바람에 우승을 조던 스피스에게 넘겨줬다.

존슨은 그러나 이번에는 자신만의 플레이에 몰두했고, 벌타를 받고도 넉넉한 차이로 우승했다. 트레이드마크인 장타보다 멘탈이 빛났던 존슨은 “벌타를 걱정하지 않고, 필드에서 클럽하우스에 들어갈 때까지 내 플레이에만 집중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연장불패의 박세리와 김세영, 그리고 악조건 속에서 생애 첫 메이저 우승을 달성한 존슨은 골프가 몰입의 게임이라는 걸 새삼 일깨워 준다. 그러나 몰입이라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깊이와 시간에도 차이가 있다. 그건 타고난 능력이나 성격이기도 하지만 노력과 경험의 결과이기도 하다.

김세영 마니아리포트 국장 freegolf@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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