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판의 핵심은 대회의 개최 시기다. 3월 초는 야구 선수들이 비시즌 동안 굳었던 몸을 서서히 예열해 나가는 시기다. 보통의 프로 선수라면 이 시기에 70~80%의 컨디션을 유지하며 개막에 맞춘다. 그러나 WBC는 이들에게 당장 100%의 전력을 쏟을 것을 요구한다. 150km/h 이상의 강속구를 던져야 하는 투수들과 폭발적인 순발력을 발휘해야 하는 야수들에게 3월의 전력 투구는 인대와 근육을 제물로 바치는 행위와 다름없다. 이번에 낙마한 원태인과 문동주가 호소한 팔꿈치와 어깨 통증은 지난 시즌의 피로가 풀리기도 전에 무리하게 페이스를 올린 결과물이다.
더욱 분노를 자아내는 지점은 이 대회의 주체인 메이저리그(MLB) 사무국의 이기주의다. WBC는 철저히 MLB의 상업적 스케줄에 맞춰져 있다. 자신들의 정규 시즌 수익을 단 1%도 손해 보지 않기 위해, 선수들의 부상 위험이 가장 높은 '프리시즌'을 개최 시기로 박아버렸다. 그러면서 정작 자국 스타들은 부상 위험을 핑계로 차출을 제한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결국 한국을 비롯한 타국 리그 선수들만 '쇼의 부속품'이 되어 소모되고 있는 셈이다.
김하성의 빙판길 사고나 최재훈의 골절 역시 단순한 불운으로만 볼 수 없다. 추운 겨울 날씨와 무리한 조기 몸만들기가 겹치며 선수들의 신체 밸런스가 무너진 탓이 크다. 몸이 재산인 프로 선수가 시즌 전부터 수술대에 오르고 전열에서 이탈하는 광경은 한국 야구의 소중한 자산이 허무하게 낭비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이제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과연 누구를 위한 대회인가. 에이스들의 팔꿈치를 갈아 넣고, 정규 시즌의 질을 떨어뜨리며, 팬들에게는 상처뿐인 결과를 안겨주는 이벤트성 대회가 정말 필요한가. 류현진, 김도영 등 남은 스타들의 어깨에 지워진 짐은 지나치게 무겁다. 이들을 보호할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는 현 시스템에서 '8강 진출'이라는 목표는 공허한 구호일 뿐이다.
지금처럼 선수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3월 개최가 고수된다면, KBO는 차기 대회 참가 자체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선수 보호가 뒷전인 국제대회는 더 이상 축제가 아니라 잔혹한 '부상 제조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차포마상'을 다 떼고 만신창이가 되어 떠나는 이번 대표팀의 뒷모습은, 한국 야구가 이 비상식적인 시스템에 던지는 마지막 경고장이다.
[강해영 마니아타임즈 기자/hae2023@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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