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U-17 여자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북한 U-17 여자 축구 대표팀 선수들[EPA=연합뉴스]](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51110092050060415e8e9410871751248331.jpg&nmt=19)
북한에선 영어 단어를 그대로 옮기지 않고, 대신 ‘가운데몰이꾼’이라고 말한다. ‘몰이’는 ‘몰다’에서 온 말로, 짐승이나 무리를 앞으로 몰아가는 행위를 뜻한다. 즉, ‘가운데몰이꾼’은 “가운데에서 공격을 주도하며 공세를 이끄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단순한 우리말화 정책의 결과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사회주의적 언어관, 즉 민족어의 순화와 계급적 언어청산이라는 이념이 놓여 있다. (본 코너 1581회 ‘북한은 문화어에서 스포츠 용어를 어떻게 바꾸었나’, 1600회 ‘사회주의 관점으로 본 북한 스포츠 언어’ 참조)
북한은 1940~50년대부터 영어·일본어식 외래어를 ‘자본주의 잔재’로 규정하고 모든 외국어 스포츠 용어를 조선식 표현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센터포드’는 ‘가운데몰이꾼’이 됐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꾼’이라는 접미어다. ‘꾼’은 노동자, 일꾼, 상인 등 ‘일하는 사람’을 뜻할 때 쓰인다. ‘가운데몰이꾼’이란 말에는 단지 선수의 포지션을 넘어 ‘공동의 목표를 위해 힘쓰는 노동자’라는 사회주의적 가치가 투영돼 있다. 축구가 단순한 경기나 오락이 아니라, 집단정신과 협동심을 길러내는 사회주의 교양의 장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남쪽의 ‘센터포드’가 개인의 득점력과 스타성을 상징한다면, 북쪽의 ‘가운데몰이꾼’은 조직의 중심에서 공격을 이끌어가는 집단의 일원이다. 이 차이는 언어의 미묘한 차이를 넘어, 사회체제의 철학적 대비를 보여준다. 북한의 신문이나 방송 보도를 보면, “가운데몰이꾼이 집단의 공격을 이끌었다”는 식의 구절이 자주 등장한다. 여기서 주어(가운데몰이꾼)는 개인 명사이지만, 서술어(이끌었다)의 의미 속에는 항상 ‘집단’이 전제되어 있다. 즉, 개인의 활약이 집단의 노력의 일부로 해석되도록 언어가 설계된 것이다.
‘가운데몰이꾼’이라는 말은 단어 이상의 상징이다. 그것은 언어로 구현된 집단주의의 미학, 즉 사회주의가 꿈꾸는 공동체적 인간상(人間像)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센터포드’와 ‘가운데몰이꾼’. 두 단어의 차이는 단지 말의 다름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눈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공 하나를 몰고 가는 행위조차 체제가 다르게 이름 붙인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저작권자 © 마니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