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롭 레프스나이더가 경기 후 TV 방송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미네소타 트위터 캡처]](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10806231735044894fed20d3049816221754.jpg&nmt=19)
태어난 직후 친부모가 아닌 남에게 입양되는 것 또한 자신의 선택이 아니다.
1991년 3월 26일 서울에서 태어난 김정태는 생후 5개월 만에 미국에 있는 독일과 아일랜드 출신 부부에게 입양됐다.
입양되면서 그의 이름은 로버트(롭) 레프스나이더가 됐다.
다행히 스포츠를 좋아하는 아버지 덕분에 그는 어렸을 때부터 야구, 풋볼 등 여러 운동을 즐겼다.그는 이 중 야구를 선택했다.
애리조나 대학교 시절 대학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며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는 등 이름을 날린 덕에 2012년 뉴욕 양키스 지명을 받았다.
마이너리그를 거쳐 2015년 7월 꿈에 그리던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그러나 자리를 잡지 못한 채 여러 팀을 전전하는 ‘저니맨’ 신세가 되고 말았다.
2017년 양키스에서 20경기를 뛴 뒤 6월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트레이드됐다.
시즌 후에는 클리블랜드로 옮겼다가 이듬해 개막을 앞두고 탬파베이 레이스로 트레이드됐다.
2019년에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신시내티 레즈로 팀을 옮겼으나 빅리그에서 뛸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러다 2019년 11월 말 텍사스 레인저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은 후 이듬해 스프링캠프에서의 맹활약으로 빅리그에 복귀했다.
당시 텍사스에는 추신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는 텍사스에서 사실상 방출되고 말았다.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 그는 미네소타 트윈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올 시즌을 준비했다.
미네소타 산하 트리플A팀인 세인트폴 세인츠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6월 미네소타 주전이 부상자 명단에 오르자 빅리그에 콜업됐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는 다시 잡은 빅리그 기회를 다시 놓칠 수는 없었다.
매 경기 이를 악물고 뛰었다. 허슬 플레이를 마다하지 않았다.
매 경기 공격과 수비에서 맹활약을 펼치자 미네소타 수뇌부는 그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줬다.
이를 악물고 뛴 그의 타율은 3할을 훌쩍 넘었다.
덕분에 그는 짧은 시간에 백업 요원이 아닌 주전 자리를 꿰찰 수 있었다.
그러나,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너무 열심히 뛴 게 화근이었다.
수비 도중 머리를 다쳐 7일짜리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복귀 후에는 2루타를 치고 달리다 햄스트링 부상을 입고는 또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햄스트링 부상에서 회복하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미네소타는 그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기로 했다.
이후 그는 트리플A에서 약 2주간 재활 경기를 통해 경기력을 회복했다.
6일(이하 한국시간) 마침내 그는 부상자 명단에서 벗어나 빅리그로 돌아왔다.
트리플A에서 맹타를 휘둘렀던 그의 방망이는 빅리그에서도 이어졌다.
이날 열린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1위 팀인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경기에서 5번 타자로 나서 3타수 2안타에 볼넷 2개를 얻어 4차례나 출루하며 팀의 승리에 힘을 보탰다.
그의 타율은 0.339가 됐다.
경기 후 그는 미네소타 TV 방송국 중계진과 인터뷰를 하는 영광을 안았다. 이날 경기의 ‘히어로’ 인터뷰인 셈이었다.
그는 돌아오자마자 잘할 수 있었던 것은 트리플A 관계자들의 도움 때문이었다고 겸손해했다.
미네소타의 한 팬은 “레전드가 돌아왔다”고 반겼다.
그의 희망은 더 이상 마이너리그에 가지 않고 빅리그에 오래 있는 것일 터.
레프스나이더에게 미네소타가 ‘약속의 땅’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오클라호마시티(미국 오클라호마주)=장성훈 특파원]
[장성훈 선임기자/seanmania2020@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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