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4년 스위스 월드컵 당시의 푸스카스. [FIFA 제공]](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01218123920013115e8e941087222111204228.jpg&nmt=19)
푸스카스는 한국 월드컵 축구 역사에 관심이 있는 축구팬이라면 한번 쯤 들어봤을 이름이다. 한국의 월드컵 역사와 직접 연관이 깊은 선수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처음 월드컵 본선에 출전한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조별예선에서 스트라이커 푸스카스가 이끄는 헝가리와 격돌했다. 푸스카스는 당대 최고의 공격수로 평가받았다. 그는 한국의 홍덕영 골키퍼를 상대로 직접 2골을 넣으며 공격력을 주도해나가 헝가리가 9-0 대승을 거두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세계 수준과 현격한 전력차이를 실감한 한국으로서는 부끄러운 참패였다. 당시 헝가리는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푸스카스가 4골을 기록하며 유고슬라비아를 꺾고 금메달을 차지하는 등 연승 가도를 달리던 무적의 팀이었다.
푸스카스는 스위스 월드컵에서 서독을 맞아 1골을 넣으며 8-3 대승을 이끌었다. 헝가리는 그가 부상으로 빠진 8강전과 4강전에서 브라질과 우루과이를 꺾고 결승에 올랐다. 결승전에서 서독을 다시 만난 헝가리는 부상에서 회복한 푸스카스가 전반 6분 선제골을 터뜨렸다. 서독과 전반을 2-2로 비기며 공방전을 펼친 헝가리는 경기 종료 6분을 남겨놓고 서독에 결승골을 허용했다.
전력 열세였던 서독은 예상을 깨고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 것은 세계 축구사에 ‘베른의 기적’으로 기록돼 있다. 헝가리는 서독에게 패하기 이전까지 5년간 32경기 무패행진을 달렸다. 올림픽 우승을 차지했으며 1953년 유럽 국제컵까지 우승을 차지해 ‘무적의 마자르 군단’으로 불리웠다. 특히 1953년 축구 발상지 잉글랜드를 6-3으로 물리치고 웸블리 구장에서 잉글랜드를 상대로 승리한 역사상 최초의 비영국팀이 되기도 했다.
이 정도로 무시무시한 전력의 헝가리 팀내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공격수가 푸스카스였다. 당연히 당시 한국축구 대표선수들에게도 그의 이름은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홍덕영 전 국가대표 골키퍼는 생전 “정말 무서운 선수였다. 골대를 지키는 것이 겁이 날 정도였다. 언제 어디서 공격을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전광석화처럼 벼락 슈팅을 날렸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푸스카스는 1956년 헝가리 혁명이후 스페인으로 망명한 뒤 스페인 명문 레알 마드리드에서 전성기를 여는 주역으로 활동하다 1966년 은퇴한 뒤 지도자로 나섰다. 1975, 76년 사우디아라비아 대표팀 감독을 맡아 아시아권에서 잠시 얼굴을 비치기도 했던 그는 1993년 헝가리 대표팀 감독을 잠시 지낸 뒤 지도자서도 은퇴했으며 2006년 76세로 세상을 떠났다.
한국 축구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푸스카스라는 이름을 손흥민을 통해 다시 듣게 된 올드 축구팬들은 기억 속의 상념을 다시 들춰보는 기회를 갖게된 듯하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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