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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손자병법] 51. 송진우와 노당익장(老當益壯)

2020-12-15 07:13

[프로야구 손자병법] 51. 송진우와 노당익장(老當益壯)

-나이가 들고 늙었지만 젊은 사람 못지않게 건장하다. 늙을수록 건장해지는 노익장(老益壯)

[프로야구 손자병법] 51. 송진우와 노당익장(老當益壯)


더 이상 가능성이 없을 듯 했다. 투수 나이 34세. 김용수, 선동열, 이상군을 생각하면 아주 많은 나이는 아니다. 그러나 결코 적은 나이도 아니었다. 그 나이에 던지는 투수는 손가락으로 셀 정도였다. 더욱이 오랫동안 무리를 했다. 기대를 걸 처지가 아니었다.

한화 좌완 송진우.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씩씩한 투수였다. 감독이 지시하면 하루 걸러 선발마운드에 올랐고 하루에 두 차례 등판하기도 했다. 마운드에 오르면 잡생각 없이 공 던지는 것에만 전념했다.

선발이고 마무리고 간에 가리지 않았던 송진우는 그 덕에 1992년 어느 나라 프로야구에도 기록을 찾아볼 수 없는 ‘희안한 투수 2관왕’이 되었다. 마운드가 마르고 닳도록 올라 선발 11승, 구원 8승에 17세이브를 올렸다.

19승으로 다승왕이 되었고 25세이브 포인트로 구원왕도 되었다. 선발투수가 구원왕까지 차지한 프로야구 최초의 ‘작품’이었으나 그런 것들 때문에 그는 결국 일찍 시들고 말았다. 48경기에 등판, 200여 이닝을 던졌으니 망가지는 것이 당연했다.

투구머신과도 같았던 송진우. 93년 7승, 94년 9승으로 가라앉았으나 95년 13승, 96년 15승으로 다시 일어섰다. 하지만 그것이 한계였다. 급격하게 힘이 떨어져 97년과 98년에는 6승밖에 올리지 못했다.


1989년 데뷔 후 한 번도 기록하지 않은 4점대 방어율, 컨트롤 되지 않는 공, 시속 130km대의 그저 그런 스피드. 투수로서의 그의 생명력은 분명히 끝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 끝났다고 말하고 있을 때 송진우는 다시 ‘힘찬 마운드’로 돌아왔다.

7월 8일 삼성전. ‘설마’했는데 완봉승을 작성했다. 4안타밖에 허용하지 않은 나무랄데 없는 완봉승이었다. 송진우는 그 해 완투승 4번을 던지며 10승고지에 올랐다. 3년만의 두자리 승수, 그의 마운드에는 노익장만이 발휘할 수 있는 지혜가 있었다.

한창 때 그의 마운드엔 힘이 넘쳐 흘렀다. 첫 타석에서 안타를 맞으면 다음 타석에선 반드시 삼진으로 잡는 오기도 있었다. 요령보다는 우격다짐으로 타자들을 내리 눌렀다.

그러나 99년 시즌 그의 공에는 그 때와 같은 강함은 없었다. 하지만 숙련된 맛이 녹아들어 있었다. 힘을 빼고 던지되 맞춰 주면서 타자들을 솎아냈다. 하긴 3구 삼진이나 맞혀 잡으나 원아웃이기는 마찬가지니 굳이 헛 힘을 쓸 필요는 없지 않은가.

야구는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8명의 야수들과 함께 하는 것임을 몸으로 깨달았다는 송진우. 때문에 완투를 해도 결코 많은 공을 던지지 않았다. 완투승한 4경기를 모두 110개 내외로 마감했다.

나이 먹은 투수의 공 던지는 법을 터득했기에 송진우의 그해 마운드엔 한여름 무더위도 없었고 쌀쌀한 가을 밤 바람도 없었다.

[이신재 마니아타임즈 기자/20manc@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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