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말 생애 첫 그랜드슬램을 날리고 있는 오윤석[사진 롯데 자이언츠 제공]](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010050852340928718e70538d2222111204228.jpg&nmt=19)
오윤석은 4일 부산 홈경기 한화전에서 단 4타석만에 싸이클링히트를 만들어냈다. 39년의 KBO 리그 역사에서 27번밖에 나오지 않은 진귀한 기록이다. 더구나 그랜드슬램이 터졌고 마지막에는 3루타도 날렸다. 모두 오윤석에게는 생애 처음이었다. 6년의 긴 기다림끝에 단 하루에 3루타, 그랜드슬램, 싸이클링히트 세가지를 동시에 만들어낸 것이다. 과연 이것이 행운만 가지고 되는 것일까?
그는 특이한 이력을 가진 선수다, 2010년 프로야구 신인드래프트에서 2차 8라운드 전체 59순위로 롯데의 지명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롯데와의 계약을 포기하고 연세대 진학을 택했다. 프로에서 자신의 이름을 날리고 싶은 야구 선수가 프로팀에 지명을 받고도 대학으로 진학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대학에서 잘한다면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충분히 프로에 갈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4년 뒤 그는 철저히 외면을 받았다. 어느 구단도 그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결국 계약금도 받지 못하고 2014년 롯데의 육성선수(신고선수)로 입단했다. 육성선수는 KBO에 정식으로 등록되는 선수에는 포함되지 않고 선수로 신고만 되어 있는 선수란 뜻이다. 2015년 전에는 신고선수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육성선수의 설움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추고 있고 가능성을 보여야만 육성선수가 되지만 대부분은 정식선수들의 훈련과정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즉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명을 받아 입단한 후배들의 훈련보조 역할도 감수해야 하는 것이 육성선수의 숙명이랄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형식적인 수준의 급여만 받는다. KBO 규약에 따른 최저연봉(2700만원)의 규정에도 적용을 받지 않는다.
1군 무대에서 꿈이 없다면 결코 버틸 수 없는 자리가 육성선수다. 그나마다 오윤석은 가능성을 인정받아 육성선수로 2014년 퓨처스리그에 출전했다. 76게임에서 40안타, 타율 0.263. 하지만 타석이 176번에 불과해 게임당 2타석이 간신히 넘을 정도로 대부분은 대타고 백업이었다.
![오윤석은 5회말 타구가 우중간으로 빠지는 것을 보고 혼신의 힘을 다해 3루에 세이프되면서 KBO 리그 통산 27번째 싸이클링히트를 완성했다.[사진 롯데 자이언츠 제공]](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010050855290951118e70538d2222111204228.jpg&nmt=19)
주로 대타로 출전하거나 1루수 백업으로 출전해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이었지만 그래도 인상적인 활약도 있었다. 4월 20일 KT전에서 2-4로 끌려가던 9회말 동점 2점 홈런을 날려 팀을 기사회생시켰고 이 덕분에 연장 10회말 허일의 끝내기 안타로 승리했다. 그리고 6월 4일 울산 한화전에서는 극적인 끝내기 안타를 날리기도 했었다. 이런 활약 덕분에 유망주 내야수 가운데 가장 많은 출전기회를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5년을 보낸 오윤석은 올해들어 주전 2루수로 출전기회를 잡았다. FA로 영입한 안치홍이 햄스트링에 발바닥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조금씩 보여주기 시작했다. 시즌이 시작하고 한달 가까이 지날 즈음인 6월 3일 KIA전에 첫 선발로 나서 4타수 무안타에 그쳤으나 이틀날인 4일에는 4타수 2안타를 날렸다. 이렇게 시작해 6월 14일까지 11게임에 주전으로 나서 37타수 13안타에 타율 0.351, 타점 6개의 준수한 성적을 올렸다.
그러나 안치홍이 복귀하면서 그는 다시 출전할 기회를 잡지 못했고 7월에는 5게임 9타수 1안타, 8월에도 8게임 13타수 3안타에 그쳤다. 그러다가 안치홍이 다시 부상으로 빠진 9월 24일부터 8번타자 주전 2루수로 고정 출장을 하면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9월 25일 한화전부터 4게임 연속 멀티히트로 14타수 9안타(타율 0.643)에 시즌 마수걸이 홈런에다 8타점까지 날렸고 볼넷도 5개나 얻어냈다.
이 덕분에 허문회 감독의 신임을 받은 그는 9월 30일 잠실 LG전에서 리드오프 자리를 꿰차면서 10월 팀의 4연승의 첨병이 되었다. 5위 두산과 3게임차 벌어져 7위에 머물고 있는 롯데의 4연승은 지금 그 어느때보다 값지다. 마지막 스퍼트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오윤석이 만들어 주었다.
오윤석은 그랜드슬램에 싸이클링히트까지 기록한 뒤 "어려웠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흘러가 울컥했다”며 “이게 현실인가 싶다. 꿈만 같다”는 말로 벅차오르는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지닌 2018년에 결혼에 올해 4월에 얻은 아들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육아를 하느라 밤잠을 설치는 데 아들에게서 좋은 기운을 받은 것 같다"는 오윤석은 말 그대로 인간 승리의 한장을 써내려 가고 있다.
[정태화 마니아리포트 기자/cth08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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