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던 ‘메츠의 전설’ 톰 시버가 3일 75세를 일기로 하늘 나라에 갔다.
뉴욕 양키스가 베이브 루스 영입 이후 메이저리그 최고의 구단으로 성장했듯, 뉴역 메츠는 톰 시버의 등장으로 만년 하위에서 벗어나 정상에 오르는 기적의 구단이 될 수 있었다.
브루클린 다저스와 뉴욕 자이언츠가 각각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로 연고지를 옮기자 뉴욕에 새로운 팀이 탄생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팀이 뉴욕 메츠다. 1962년 창단된 메츠는 그러나 창단 첫 해 40승120패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내셔널리그 꼴찌였다. 그 이후에도 최하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등 ‘동네북’ 신세로 전락했다. 그러다 1967년 혜성처럼 나타난 톰 시버의 활약으로 1969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1944년 11월 17 일 캘리포니아주 프레즈노에서 당시 최고의 아마추어 골퍼 찰스 시버의 아들로 태어난 톰 시버는 남가주대학에서 이름을 떨쳤다. 1966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가 그를 지명한 뒤 5만1500 달러에 계약했으나 계약 시점이 대학 야구 시즌이 시작된 후였다며 당시 메이저리그 커미셔너 윌리엄 에커트가 계약을 무효화해버렸다. 결국 시버는 추첨을 통해 메츠 유니폼을 입게 됐다.
우여곡절 끝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시버는 1967년 16승13패, 2.76의 평균자책점으로 신인왕에 올랐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었다.
이듬해인 1968년에도 16승12패에 2.20의 평균자책점을 찍었다.
그리고 운명의 1969년. 시버는 정규시즌에서 25승7패에 2.21이라는 경이적인 성적을 올린 후 팀을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메츠는 당시 절대 열세로 평가받았으나 시버의 활약에 힘입어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꺾었다. 메츠가 명문 구단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시버는 승승장구했다. 1986년까지 20시즌 동안 통산 311승 205패, 평균자책점 2.86, 탈삼진 3천640개라는 놀라운 기록을 남겼다. 12차례나 올스타에 뽑혔으며 세 차례나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한 시즌 20승 이상도 4번이나 달성, 메츠 역사상 최고의 투수로 꼽혔다. 이밖에 다승(198승), 평균자책점(2.57), 탈삼진(2천541개), 완봉(44승), 완투(171경기) 등 메츠 구단 투수의 모든 최다, 최고 기록을 세웠다. 시버는 또 월터 존슨(417승, 탈삼진 3천509개, 평균자책점 2.17과 함께 300승, 탈삼진 3000개, 평균자책점 2점대를 달성한 역대 두 명의 투수 중 한 명이다. 아울러 통산 16번이나 개막전 선발 투수로 등판해 이 부문 메이저리그 최다 기록도 보유했다.
그의 등 번호 ‘41번’은 1988년 메츠의 영구결번이 됐다.
1992년 명예의 전당 입회자를 뽑는 미국야구기자협회의 투표에서 당시 시점으로 역대 최고 득표율 98.8%를 찍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시버의 주무기는 강속구. 제고력 또한 일품이어서 홈런왕 행크 에런이 자신이 상대한 투수 중 가장 까다로운 선수로 시버를 꼽았을 정도였다.
시버는 1992년 이런 말을 남겼다. “팀 관점에서 보면 1969년 월드시리즈 우승이 가장 기억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개인 관점에서는 300승을 달성했을 때가 가장 기뻤다.”
[장성훈 선임기자/seanmania2020@maniareport.com]
<저작권자 © 마니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