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오경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자가 선거운동기간 중 광명시장에서 어린애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오경 당선자 페이스북 캡처]](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00416152504033735e8e941087222111204228.jpg&nmt=19)
![서울시청 여자핸드볼 감독 시절의 임오경 당선자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00416152945053165e8e941087222111204228.jpg&nmt=19)
그동안 이에리사 전 태릉선수촌장, 김운용 전 대한체육회장 등 국가대표출신과 체육단체장 등이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된 적이 있지만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지역대표로 선거를 거쳐 국회의원에 뽑힌 것은 국내 스포츠 사상 그녀가 처음이다. 처음이었던만큼 그녀의 국회의원 당선은 힘들고 어려운 길이었다. 화려한 꽃을 피우기 위해서 오랜 인고의 시간을 가졌다.
기자가 그녀를 직접 처음 본 것은 2012년 5월이었다. 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연구소장으로 문화체육부에서 주관하는 스포츠미디어 아카데미 교육 책임자를 맡고 있을 때였다. 40대 불혹의 나이였던 그녀는 이 교육 과정에 등록, 새로운 배움에 대한 열정을 불사르고 있었다. 그녀는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금메달의 주역을 시작으로, 1995년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은메달, 2004년 아테네올림픽 은메달까지 20대부터 30대 중반까지 국가대표 선수생활을 하며 세계적인 핸드볼 스타로 이름을 날렸다.
그녀는 자기 소개서에서 “특별히 남들보다 잘났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초등학교 때 기본기를 철저히 익힌 것이 아주 큰 힘이 됐다. 초등학교 이후는 주어진 운동환경에서 열심히 해 단계를 쌓아 올라갔다”며 “슬럼프도 있었고, 운동을 그만둘까도 생각했다. 힘들 때마다 초등학교 때 닦은 기본기를 바탕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운동선수에게도 기본기는 생명줄과 같은 것이다. 기본기를 제대로 갖추지 않고 운동을 하다보면 잔기술과 요령만 생겨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하기가 매우 어렵다”며 기본기가 성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강조했다.
고 2때 국가대표로 처음 뽑힌 뒤 세 번의 올림픽(바르셀로나,애틀랜타, 아테네)에서 금메달 1개와 은메달 2개를 그녀는 한때 세계 최고의 선수였다. 한체대를 졸업하고 1994년 23살의 나이로 일본 무대에도 진출했다. 신생팀 히로시마 이즈미에서 감독 겸 선수로 활동하면서 리그 8연패를 포함해 총 27회의 우승을 달성했다. 일본 내 주요 4개 대회에서 모두 우승하는 ‘그랜드 슬램’도 이뤄냈다. 일본 기자단이 선정하는 인기 투표에서도 8년 연속 인기상을 받을 정도로 대중적인 스타로 인정받았다.
1999년 배드민턴 국가대표 출신인 박성우와 결혼한 그녀는 힘든 출산을 하면서도 선수생활을 계속 했다. 그녀는 “20대에 임신했을 때 정말 여자로 태어난 것이 가장 후회되기도 했다”며 결혼생활이 개인과 선수생활을 하는데 큰 어려움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녀는 수년전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전 남편과 원만하게 이혼하고 딸과 둘이 살고 있다는 것을 공개,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현역 은퇴후 그녀는 2008년 국내 구기종목사상 최초의 여성지도자로 서울시청 핸드볼팀 감독을 맡아 후배들을 지도하며 한체대 대학원에서 석‧박사를 이수했다. 전문 경험과 지식을 갖춘 지도자로 활동하던 그녀에게 정치권의 손길이 끊이지 않았다. 모 정당이 화려한 경력을 가진 그녀에게 모 정당이 2010년 손을 내밀었지만 그녀는 이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가 정치권으로 나가야겠다고 마음을 바꾼 사건이 터졌다 .2016년 국정농단 사태대 체육관련 재단으로 알려져있던 K스포츠가 연루됐다는 것이 밝혀지면서였다. 그녀는 “평생 스포츠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바꾸려고 살아왔는데 이 사건으로 스포츠가 바닥을 쳤다”며 “관련 보도를 보고 통곡했다. 체육인들의 노력이 부정부패로 인해 물거품이 됐다는 생각에 피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그녀는 지난 1월 더불어민주당의 인재 영입으로 공식적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여당에서 체육계를 대표하게 된 그녀는 “이제 국민께 받은 사랑을 되돌려드리고 싶다”며 “코트에서 쓰러진 동료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줬듯, 이제 고단한 국민들 손을 잡아들리는 정치인이 되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민주당은 여성스포츠지자도로서 오랜 기간 체육계에서 활동하며 여성체육인들의 역할 증진에 힘썼고, 미투운동과 폭력사건으로 얼룩진 체육인권보호와 남북체육협력교류사업 증진 등 체육계 현안 해결을 위한 인재로 영입했다고 발탁배경을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광명갑 지역구 후보로 확정된 이후 지난 수개월간 그녀는 “우생순의 기적을 광명으로”라는 선거 구호를 내세우며 난생 처음 선거활동에 뛰어 다니느랴 정신이 없었다.
모든 것이 낯설고 힘들었지만 유명 스포츠 스타출신인 그에게는 시민들과의 무관심 싸움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고 한다.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하루는 시민 한 분이 ‘고생한다’며 손을 잡고 초콜릿을 주시는데 코가 맹맹해지도록 펑펑 울었다”며 “내가 시민들의 손을 잡으러 왔는데 시민들이 내 손을 잡아주신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제 나는 광명 사람”이라며 “이 분들에게 갚아야 할 빚이 많이 생겼다. 이 초심 절대 잊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선거 지원에 딸(20)이 나서는 등 가족 전체가 그녀를 도와주었다. 그녀는 “지난 40여년을 가족들에게 못할 짓을 했다. 나는 평생 걱정만 끼치고 산 딸, 동생”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녀는 당선이 확정된 뒤 “입으로 하는 정치가 아닌 현장을 뛰며 많은 이야기를 듣는 정치를 하고 싶다”며 “선거운동 기간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잘 보이려고 하지 않았다. 진실한 내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고 소감을 말했다.
“광명을 땀으로 적시겠다. 최고의 도시로 만들겠다”며 총선에 뛰어든 그녀는 광명을 스포츠‧레저‧문화‧예술인프라가 조성된 명품 도시, 환경 개선과 도시 재생을 통한 새로운 광명 만들기 등 공약을 반드시 실천해 보일 계획이다.
새로운 경기장인 여의도 국회에서 그녀가 어떤 모습을 선보일 지 국민들은 큰 관심을 갖고 지켜볼 것이다.
[김학수 마니아리포트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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