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21(금)

야구

'알바'를 하다, 야구를 위해

[연속기획 '기적'②] 독립야구단 '연천미라클' 이야기

2015-08-01 10:00

여기 꿈을 이루기 위해 분투하는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프로팀에 가지 못한 야구 선수들입니다. 야구 미생들의 뜨거운 눈물과 꿈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편집자 주]

연천미라클야구단김영원,신지혁,표경원,김진오선수(왼쪽부터)
연천미라클야구단김영원,신지혁,표경원,김진오선수(왼쪽부터)
야구를 3년간 쉬었다. 2년 간의 군복무 후 스크린 야구장에서 야간에 일했다. 업무가 끝나면 새벽 3시. 지하철이 다니기 시작하는 새벽 5시 30분까지 혼자 배트를 휘두르다 집으로 가곤 했다. 분당의 한 병원에서 응급 환자를 돌보는 일도 했다.

야구를 할 수 있는 지금, 나는 행복하다.

내 이름은 김영원(25세, 교토국제고-칸사이국제대-고양원더스, 내야수). 중학교때 일본으로 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니며 야구를 했다. 군대 가려고 귀국한 뒤 고양 원더스에서 5,6개월 몸 담기도 했다. 입대했을 때는 서럽기도 하고, 얼마나 야구가 하고 싶던지..

어디든 나갈 수 있고 뭐든 할 수 있는 만능 선수가 되고 싶다. 경기에 꾸준히 나가면서 성적도 내고, 초심을 잃지 않는 그런 선수가 되고 싶다.

주말 오전 과천에서 야구에 취미가 있는 초등학생들을 가르친다. 3학년 이하 한 학급과 4학년 이상 한 학급을 3,4시간 동안 지도한다. 많을 때는 40명 가까운 인원이어서 조금 정신이 없기도 하다. 그러나 보람도 있다. 아이들의 실력이 조금씩 향상되는 모습을 볼 때 뿌듯하다.

한 달에 받는 강사료는 50만 원. 사정이 좋지 않아서 회비를 충당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종일 연습을 하거나 경기를 치른 뒤 주말에, 그것도 요즘처럼 더울 때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려면 체력적으로 힘이 좀 드는 게 사실이다.

신지혁선수(가운데)와하일성야구교실수강생들
신지혁선수(가운데)와하일성야구교실수강생들
그러나 야구만 할 수 있다면 상관 없다. 야구를 새로운 마음으로 하기 위해 이름도 바꿨다. 지금 내 이름은 신지혁(25세, 서울고-두산베어스, 내야수). 두산베어스에 3년간 몸 담았을 때는 신효철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실책을 해도 여유롭게 웃을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 아프지 않고 운동 꾸준히 해서 올해 안에 프로팀으로 갔으면 좋겠다. 어떤 구단이든 나를 뽑아준다면 열심히 잘 해낼 자신이 있다.

한 때 보안업체에서 야간 경호팀으로 일했다. 대기하다가 비상 신호가 오면 고객 거주지로 출동해 보안 점검을 하는 일이었다. 리틀야구팀을 지도하는 아르바이트도 했다.

나는 표경원(27세, 경동고-세한대, 투수). 2012년 군복무를 하게 되면서 야구를 그만 뒀었다. 그러나 야구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했다. 야구생각이 머리를 떠날 때가 없었다. 아르바이트와 몸 만들기를 거쳐 지난 6월 초 미라클 팀에 합류했다.

지난 달 11일 고려대 야구팀과의 경기에서 4년여 만에 마운드에 올랐다. 설레이고 긴장되는 등판이었다. 결과는 생각보다 좋았다. 첫 타자를 삼진으로 잡고 예정보다 더 던지고 내려왔다.

야구를 다시 시작한 지금 나 역시 행복하다. 자신만의 스타일로 열심히 하는 선수라는 평가를 받고 싶다.

2006년 3월 5일 도쿄돔에서 벌어진 월드베이스볼 클래식 1라운드 A조 대한민국 대 일본과의 경기.


우리나라가 0:2로 뒤진 4회말 2사 만루에서 니시오카 쓰요시가 친 우익선상의 타구를 ‘국민 우익수’ 이진영이 멋진 다이빙 캐치로 잡아냈다. 3실점의 위기를 벗어난 우리 팀은 3:2의 역전승을 거뒀다.

초등학교 4학년이던 나, 김진오(21세, 충훈고, 투수)가 야구에 ‘꽂힌’ 건 바로 그 때다. '나라를 구해낸 외야수'가 너무나 멋져 보였다.

넉넉지 않은 집안형편이었지만 야구가 하고 싶어 부모님을 끈질기게 졸랐다.

결국 평촌중학교 1학년 때 야구부에 입단하면서 선수가 됐다. 당시 야구부장님이 147cm의 키와 작은 몸집으로 야구를 할 수 있겠느냐고 하셨지만 나는 시켜만 주면 잘 할 수 있다고 우겨서 야구부에 들어갔다.

좌완인 나는 고등학교 진학과 함께 투수로 활약했다. 그러다 3학년때 왼쪽 어깨가 갑자기 아파 6월부터 야구를 그만뒀다. 병원은 큰 돈 들까봐 가지 못했다.

편의점에서 카운터를 지키거나 물품 정리를 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어느 날 미라클 야구단 창단 소식을 들었다. 그 뒤부터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꼬박 꼬박 모아 회비를 마련했다.

어깨는 어느새 나아 있었다. 염증 때문에 아팠을 것이라는 얘기를 나중에야 들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미라클 선수다.

몸집이 아직도 작은 편(170cm, 65kg)이어서 체중을 늘리려고 애쓴다. 그래야 공에 속도가 붙기 때문이다. 미라클팀의 형들이 씨름 선수들처럼 밥 먹으면 바로 자라고 한다. 그러지는 못하지만 식사를 한 뒤엔 가능한 몸을 움직이지 않으려 한다.

구속이 시속 130~140km 정도 나와준다면 왼손 투수로서 프로의 세계에 내 자리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힘들 때 나는 캐롤 터킹턴(Carol A.Turkington, 미국 저술가/저널리스트)의 명언을 떠올린다.

“절대 후회하지 마라. 좋았다면 추억이고 나빴다면 경험이다.(Never Regret. If it’s good, it’s wonderful. If it’s bad, it’s experience.)"

※ 이 기사는 연천 미라클야구단을 후원하기 위해 <다음 뉴스 펀딩>에 제공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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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일 기자 jbi@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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