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중 피아자는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 갓 정착했을 때 배터리를 이루었던 동반자 중 하나였다. 다만, ‘포수로서의 피아자’가 투수들에게 큰 인기를 끌지 못했던 반면, ‘타자로서의 피아자’는 어느 팀에서건 톡톡히 4번 타자 역할을 수행했던 최고의 해결사였다. 공격 못지않게 수비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였다면, 그는 이반 로드리게즈와 함께 양대 리그를 주름잡는 ‘수비공격형 포수’로 명성을 떨쳤을 뻔했다.
‘응답하라 1990’, 역대 박찬호와 호흡을 맞췄던 ‘안방마님’들
따지고 보면, 박찬호는 양대 리그를 걸쳐 ‘역대 최강의 포수’들과 호흡을 맞췄던 셈이다. 텍사스 레인저스 시절에는 이반 로드리게즈와 꽤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우여곡절이 있었다고는 하나, 이것도 사실 꽤 큰 행운인 셈이다. 물론, 이 둘을 포함하여 박찬호와 호흡을 맞췄던 ‘안방마님’들은 오히려 국내 팬들에게 더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피아자 이후 박찬호와 호흡을 맞췄던 이는 당시 최고의 수비형 포수임을 자랑했던 찰스 존슨이었다. 박찬호 외에도 당시 다저스 투수들이 꽤 편하게 공을 던졌을 만큼 존슨은 상당히 안정적인 투수 리드를 보여주며, 1998년 골든글러브 수상자로도 선정된 바 있다. 그러나 다저스와의 인연은 1998시즌이 전부였다. 이후 볼티모어와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거쳐 2001년에 다시 플로리다로 복귀했는데, 이 당시 박찬호와 적으로 만나 맞대결을 펼치기도 했다.
존슨 이후에는 ‘포수 40홈런’의 주인공인 토드 헌들리가 박찬호와 배터리를 이루는 듯싶었지만, 정작 그와 가장 많이 호흡을 맞춘 이는 채드 크루터였다. 전형적인 수비형 포수였던 크루터는 주로 박찬호가 나올 때만 선발로 등판했을 뿐, 나머지는 백업 포수로 다저스의 안방을 책임졌던 이였다. 그리고 이 당시 ‘공격형 포수’로 다저스가 많은 기회를 부여했던 이가 바로 ‘폴 로두카’였다. 로두카는 박찬호가 등판할 때마다 주로 경기 후반에 투입되거나 휴식을 취했는데, 행여 야수 자원들 가운데 돌발 상황(부상 등)이 발생하여 공백이 생기면 그 자리를 메우기도 했다. 일례로 외야수 셰필드가 가벼운 발목 부상으로 그라운드를 빠져나갈 때 로두카가 그 자리를 메우기 위해 좌익수로 출장한 일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로두카가 박찬호와 전혀 호흡을 맞추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간혹 크루터가 부상 등으로 자리를 비울 때 로두카가 박찬호의 공을 받기도 했다.
FA 자격을 얻어 다저스를 떠난 이후에도 많은 포수가 박찬호와 호흡을 맞춘 바 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이가 수비공격형 안방마님인 이반 로드리게즈라는 사실은 앞서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둘은 시즌 초반에 호흡이 맞지 않아 완벽하게 의사 소통이 될 때까지 다른 이가 그 공백을 매워야 했다. 그가 바로 백업 포수인 빌 해슬먼이었다. 크루터와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수비형 포수인 해슬먼은 박찬호가 로드리게즈와 호흡을 맞추기 전까지 ‘전담 포수’의 형태로 박찬호의 공을 받은 바 있다. 이후 로드리게즈가 계약 만료로 팀을 떠난 이후에는 아이나 디아즈가 트레이드로 텍사스 유니폼을 입었고, 다저스 시절 동료였던 크루터도 합류하는 등 ‘뜻하지 않은 재회’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텍사스를 떠나 샌디에이고로 트레이드된 이후에는 다시 피아자와 재회하며 배터리를 이루는 듯싶었지만, 사실 박찬호의 전담 포수는 조시 바드였다. 이는 바드와 호흡을 맞췄을 때 박찬호의 투구 내용이 좋았던 사실에 근거한 브루스 보치 당시 샌디에이고 감독의 배려이기도 했다. 이후에도 꽤 많은 이들이 박찬호와 배터리를 이뤘지만, 전성기를 구가했던 1990년대~2000년대만큼 많은 기회가 주어졌던 것은 아니었다.
[eugenephi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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