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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부산고의 미소년, 현역 병장, 에이스 정수민 이야기

2013년 귀국 이후 현재 22사단에서 행정병으로 현역 복무

2014-11-10 01:22

▲강원도22사단모처에서만난정수민.현재그는현역병장으로국방의의무를다하고있다.사진│김현희기자
▲강원도22사단모처에서만난정수민.현재그는현역병장으로국방의의무를다하고있다.사진│김현희기자
[마니아리포트 김현희 기자]지난 2008년, 부산고 야구부는 또 한 번의 ‘르네상스’ 시대를 맞은 바 있다. 2000년, 추신수(텍사스)-정근우(한화)-김백만(전 한화) 트리오를 앞세워 대통령배 대회 2연패를 차지한 이후 많은 유망주가 프로 입성에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이들은 연고지인 부산에서 열린 ‘화랑대기 전국 고교야구대회’에서 대거 두각을 나타내며 1번의 우승과 1번의 준우승을 일궈낸 바 있다. 그 중심에는 ‘예비 메이저리거’로 손꼽혔던 에이스 듀오, 안태경(현 롯데)과 정수민(전 시카고)이 있었다. 안태경은 3학년 진학과 함께 텍사스 레인저스와 계약금 80만 달러 조건에 태평양을 건넜고, 정수민 역시 전부터 꾸준히 관심을 보여 온 시카고 컵스와 입단 계약을 맺었다. 두 이의 성장 가능성을 감안해 보았을 때 ‘미래의 박찬호’를 볼 수 있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처럼 보였다.

이 중 정수민은 싱글 A까지 오르며, 나름대로 성과를 보여줬다. 특히, 고교 때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던 빠른 볼 구속이 점차 증가했다는 점은 상당히 고무적이었다. 여기에 마이너리거라면 반드시 경험해야 하는 ‘장거리 버스 이동’도 무난하게 소화할 만큼, 체력적으로도 별다른 문제를 발견할 수 없었다. 이대로 갈 경우, 더블 A로 승격하는 것도 문제가 아닐 듯 보였다. 그러나 2013년을 앞두고 시카고 컵스 마이너리그 로스터에서 정수민의 이름은 사라져 있었다. 미국 야구에 정통한 인사로부터 ‘방출’이라는 소식만 전달되었을 뿐, 그의 이후 행적을 아는 이는 거의 없었다. 그렇게 ‘정수민’의 이름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점차 사라지는 듯싶었다.

부산고의 미소 천사, 현역 병장, 에이스 정수민 이야기

귀국 이후 정수민의 행적을 추적하는 일이 생각 외로 막막해졌을 때, 그의 친구이자 동료인 안태경이 그의 근황을 전달해줬다. 그가 있는 곳은 놀랍게도 군부대였다. 안태경 본인이 17사단 수색대 요원으로 군 복무에 임한 것과 마찬가지로 정수민 역시 현역으로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었다. 다만, 안태경보다 조금 늦게 군 복무에 임한 정수민의 현재 계급이 ‘상병’이라는 소식이 들려온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이에 필자는 전투복을 입은 그의 모습을 직접 지켜보기 위해 그가 복무하고 있다는 부대를 직접 찾아갔다.

“먼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충성!”

강원도 고성군에 위치한 22사단에서 군복무에 임하고 있는 그는 씩씩한 모습으로 군인으로서의 예부터 먼저 표했다. 거수경례하는 모습에서부터 시작하여 ‘다/나/까’로 끝나는 말투를 듣고 나니, 영락없는 대한민국 군인의 모습 그대로였다. 조기 진급으로 인하여 병장을 한 달 일찍 달았다는 소식까지 전달했다. 그렇게 분대장 견장까지 달고 나타난 ‘현역 병장’ 정수민은 환한 웃음을 짓고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2011년, 부산고-경남고 라이벌전 이후 무려 3년 만에 다시 그를 만난 셈이었다.

당시에도 늘 웃는 모습으로 필자와 대화를 나누던 정수민은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미소 천사’다운 모습을 잃지 않았다. 정수민을 특히 아낀다는 정훈장교 양군모 중위 역시 “분대장으로서 정말 잘한다. 리더십도 있고, 분대원들을 잘 챙겨줄 줄 안다. 특히, 본부중대는 업무 특성상 각 부서에서 행정병 역할을 하는 인원이 많은데, 그 인원을 데리고 대대 체육 대회에서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라며 그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양 중위가 언급한 대로 현재 그는 본부 중대에서 군수 행정병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한 그에게 부산고 시절은 ‘잊지 못할 추억’이다. 특히, 지금은 고인이 된 조성옥 감독과 2007년을 기점으로 사령탑에 오른 김민호 감독의 지도를 모두 받았다는 사실은 미국에서 꽤 도움이 됐다. 당시를 떠올린 정수민은 “두 감독님의 스타일에는 각자 장단점이 있다.”라고 전제하면서도 “조성옥 감독님의 스타일은 말 그대로 ‘스파르타식’이다. 정말 쉴 틈이 없었다. 덕분에 러닝을 포함하여 기초 체력은 자신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일본식에 가까웠다. 반면 김민호 감독님은 프로로서의 마음가짐을 소중히 간직하게 하셨고, 웬만하면 선수들에게 맡기는 스타일이었다. 전형적인 ‘미국식’이 아닐까 싶다.”라며 두 지도자에게 좋은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는 한편, 조성옥 감독의 별세 소식이 전달되고, 그러한 가운데 동의대가 사령탑 없이 우승을 차지했다는 소식을 듣자 몇 번이나 ‘정말이냐?’라고 물어봤다고 한다.

“사실 나와 (안)태경이가 조성옥 감독님께서 마지막으로 뽑은 제자들이었다. 그랬기 때문인지, 훈련은 훈련대로 힘들었지만 정말 잘해 주셨다. 그래서 별세 소식을 듣고 나서 몸이 미국에 있어 빈소에 갈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많이 울었다.” 정수민의 진심이다. 사실 정수민을 포함하여 ‘조성옥의 아이들’은 프로와 아마에서 제 몫을 다 한 이들이 많았다. 스승의 임종 소식을 들은 직후 해당 일에 ‘추모 홈런’을 기록한 추신수도 그 중 하나였다.

조성옥 감독은 팀의 전체적인 조화에 힘썼지만, 투수조에서 선수들을 따뜻하게 감싸 준 이도 있었다. 바로 이상번 현 동의대 감독이다. 정수민도 이 감독을 ‘아버지’로 부를 정도로 잘 따른다고 한다. 김백만 부산고 코치 역시 이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하자 정수민은 “그래서 이 감독님의 첫째 아들이 김 코치님, 둘째가 나다.”라는 말로 주위의 웃음을 자아냈다. 가족 이상의 끈끈한 정을 지닌 사나이들이 있기에 훈훈한 사제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 2부, ‘미국 진출 이후의 정수민’으로 이어집니다 -

[eugenephi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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