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시즌 성공 안착의 비결은 바로 주무기인 '명품 체인지업' 때문이었다. 시속 150km 안팎의 빠른 공과 같은 투구폼에서 나오는 체인지업은 시속 130km대. 타자들이 속수무책으로 헛방망이를 돌리기 일쑤였다. 한국 프로야구와 베이징올림픽, 월드베이스볼클래식 등 국내외 무대를 접수했던 그 체인지업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양상이 달라졌다. 체인지업의 피안타율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명성이 다소 퇴색했다. 꾸준했던 2013시즌에 비해 기복이 있었던 올해, 류현진이 다소 고전했던 이유다. 지난해 5이닝 이전 강판이 딱 1번뿐이던 류현진은 올해 3이닝 이전 조기 강판이 3번이나 나왔다. 그나마도 지난 시즌은 막판 포스트시즌을 대비한 4회 투구였다.
영리한 류현진은 그러나 체인지업의 위기를 슬라이더의 재발견으로 극복했다. 이른바 고속 슬라이더, 혹은 컷 패스트볼(커터)로 2년 연속 14승 투수에 오를 수 있었다.
그렇다면 류현진은 기로에 서 있다. MLB 3년째를 맞는 2015시즌을 어떤 구종으로 이겨내야 하는가의 문제다. 체인지업이냐, 슬라이더냐. 어쩌면 정체성에 혼란이 올 수도 있는 상황. 과연 류현진의 선택은 무엇일까.
▲체인지업의 희비 '지난해 명품, 올해는 난타'
지난해 류현진의 체인지업은 MLB 정상급이었다. 피안타율이 고작 1할6푼4리에 불과했다. 직구(.295), 슬라이더(.225), 커브(.307)에 비해 압도적이었다.
시즌 중 MLB 감독들이 뽑은 최고의 체인지업 중 2위를 차지할 정도였다. 1위는 2008년 내셔널리그 챔피언십(NLCS)과 월드시리즈(WS) MVP에 빛나는 콜 해멀스(필라델피아)였다. 한 마디로 류현진은 데뷔 첫 해 MLB 수위를 다투는 체인지업을 던졌다는 것이다.

류현진의 선택은 슬라이더였다. 커브의 각도 예리하게 꺾였지만 제 2의 무기로 삼은 것은 슬라이더였다. LA 다저스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에게 사사받은 새 주무기는 위력이 대단했다. 지난해 2할2푼5리였던 슬라이더 피안타율은 2할1푼1리로 4가지 구종 중 가장 낮았다.
특히 80마일 후반(140km 안팎)에서 형성되는 구질은 커터로도 불렸다. 직구처럼 오다 빠르게 꺾였지만 각이 슬라이더보다 적은 궤적 때문에 그랬다. 정작 본인은 "커터가 아니고 빠른 슬라이더"라고 했지만 전문가들은 커터라고 했다.
그러다 보니 체인지업 비중도 낮아졌다. 지난해 22.4%였던 체인지업 구사율은 올해 20% 아래(19%)로 떨어졌다. 시즌 중 "체인지업을 더 구사하겠다"고 했지만 비중이 달라지진 않았다. 빠른 공은 52%로 지난해에 비해 큰 변화가 없었다. 슬라이더가 16%, 커브가 13%를 차지했다. 그렇다면 내년에는 각광받았던 구질을 밀어야 하지 않을까.
▲"내 주무기 체인지업 찾을 것"
하지만 류현진은 단호했다. 지금까지 자신을 있게 해준 체인지업으로 승부를 걸 작정이다. 21일 회견에서 류현진은 2015시즌 구종 선택에 대한 질문에 곧바로 "내년에는 주무기인 체인지업을 잘 던져야 할 것"이라는 답을 내놨다.
2013년의 명품과 자신의 뿌리를 다시 찾겠다는 것이다. 류현진은 "체인지업이 지난해보다 많이 약해진 느낌이 있다"면서 "내년에는 체인지업을 조금 더 신경쓸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예전에 던졌던 것처럼 해도 괜찮다"고도 했다.
이런 움직임은 시즌 후반부터 일어났다. 한때 30%에 가까웠던 슬라이더 비중이었으나 점차 줄더니 올해 마지막 등판이던 지난 7일은 4%에 불과했다. 세인트루이스와 NLDS 3차전에서 류현진은 직구 51개, 커브 22개, 체인지업 18개를 던졌으나 슬라이더는 3개뿐이었다.

결국은 체인지업이 본질이요, 슬라이더는 받쳐주는 역할이다. 류현진은 "슬라이더가 잘 들어간 경기가 몇 번 있었지만 (갈수록) 좋을 때보다 떨어져서 조금씩 (비중이) 자연스럽게 바뀐 것 같다"고 올해 구종 변화를 설명했다.
▲"그날 좋은 공이 결정구…제구력에 집중"
이런 다짐에도 내년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실 지난 시즌 뒤 류현진은 새 구종 연마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시즌 중 체인지업이 말을 듣지 않자 류현진은 동료들에게 커브와 슬라이더를 배웠다.
내년에도 체인지업을 기반으로 결정구를 갈 것이지만 다른 구종도 요긴하게 쓰일 전망이다. 류현진은 결정구 선택에 대해 "경기 전에는 분석 외에 어떤 공을 던져야겠다 선택한 적은 없다"면서 "불펜에서 몸을 풀었을 때 좋았던 공과 당일 좋았던 공을 많이 던졌던 것 같다"고 했다.
올해도 류현진은 새 구종 개발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기자회견에서 류현진은 "지난해도 다른 구종을 만들겠다고 한 적은 없다"면서 "내년에는 현 구종을 다듬을 생각이고 따로 개발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내년에는 구속 대신 제구력을 강조했다. 류현진은 "제구력이 얼마나 되느냐가 그날 경기와 한 시즌 농사를 좌우한다"면서 "제구력에 집중할 생각"이라고 힘을 줬다.
기본으로 돌아간 것이다. 일단은 자신의 장점인 체인지업과 제구력을 강조한 것이다. MLB 2년을 보내면서 기로에 섰던 류현진은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고, 나아갈 방향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CBS노컷뉴스 임종률 기자 airjr@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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