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만큼 10년 전에는 국내에서 ‘포스트 이승엽 찾기’가 한창이었다. 바로 이러한 때에 놀라운 소식이 야구계를 강타한 바 있다. 성남고의 포수 유망주가 4연타석 홈런을 기록하며 팀을 이끌었다는 소식이 그것이었다. 이 소식은 주요 뉴스로도 다뤄지면서 그는 프로에 입단하기 전부터 유명세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이제는 대한민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거포로 거듭난 선수, 박병호(넥센)는 그렇게 적지 않은 주목을 받으며 야구계에 등장했다.
‘홈런타자 위용’ 보여 준 4연타석 홈런과 1경기 4홈런
필자가 처음 박병호를 만난 것도 바로 10년 전, 대통령배 대회가 한창이었던 동대문 야구장에서였다. 성남고와 화순고의 1회전 경기에서 모습을 드러낸 박병호는 혼자서 3연타석 홈런을 쏘아 올리며 ‘대기록’의 탄생을 예고했다. 물론 1회전 종료 이후에도 신기록을 의식하는 이들은 없었다. 하지만, 역시는 바로 이틀 뒤에 펼쳐졌다. 당시 휘문고와의 16강전을 맞이했던 박병호는 첫 타석에 들어서자마자 홈런포를 가동하며 한국 고교야구 최초로 ‘4연타석 홈런’ 기록을 완성했다. 비록 팀은 휘문고에 7-10으로 패하며 8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박병호라는 이름을 전국에 알리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이는 프로야구의 ‘거포 부재’라는 숙제를 박병호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도 이어졌다.
물론 이후 그는 혹독한 성장통을 겪으며 2군 무대를 전전해야 했다. 상무 입대 이후에는 ‘2군 홈런왕’에도 오르며 승승장구했지만, 소속팀 LG에서 기회를 얻는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특히, ‘외야수 빅5’가 형성(이병규, 이택근, 이진영, 이대형, 박용택)되었을 때에는 약해진 자신의 입지를 느끼고 한때 야구를 포기하려고 했다는 소문까지 들릴 정도였다. 실제로 그는 LG에 소속되어 있을 당시, 단 한 번도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하지 못했다.
그러한 그에게 ‘넥센 이적’은 말 그대로 ‘인생의 터닝 포인트’로 이어졌다. 이적 이후 생애 첫 두 자릿수 홈런을 경험한 그는 풀타임 4번 타자로 뛴 이후 단 한 번도 리그 MVP 자리를 놓쳐 본 일이 없다. 물론, 홈런왕 타이틀 역시 그의 몫이었다. 고교 시절부터 타고났던 파워에 스스로 노력을 거듭한 결과가 비로소 빛을 발한 결과였다. 여기에 목동 구장은 그가 중학 시절에 장외 홈런을 기록했던 좋은 추억을 지니고 있던 장소였다. 그만큼 마음의 안정까지 찾을 수 있었던 셈이다. 삼박자가 모두 갖춰진 상황에서 좋은 성적이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순서였다.
그러나 꾸준히 홈런왕 타이틀을 차지하는 것과 특정한 일자에 홈런을 몰아치는 것은 분명히 차이가 있었다. 그랬기에 지난 3일, NC와의 경기에서 한 경기에 무려 4개의 홈런을 쏘아 올린 장면은 10년 전의 ‘4연타석 홈런 기록’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4일 경기에서도 대포를 기록하는 등 두 경기를 통하여 무려 5개의 홈런을 몰아쳤다. 9월 일정을 소화하기 전까지만 해도 ‘50홈런은 무리일 것’이라는 예상이 점차 틀려질 수 있다는 사실이 지난 두 번의 경기를 통하여 증명된 셈이다.
10년 전 당시, 필자는 그를 향하여 “유년 시절, 공중파 TV를 통하여 봤던 배명고 김동주 이후 홈런 잘 치는 선수는 정말 처음 봤다. 앞으로 프로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다오.”라며 덕담을 건넨 바 있다. 이에 박병호도 프로에서 훌륭한 선수가 될 것임을 약속한 바 있다. 그 약속을 지키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난 만큼, 향후에도 지금의 모습에 안주하지 않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거포로 거듭나기를 기원해 본다.
[eugenephi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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