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22(토)

야구

'23년 LG맨' 정성주 차장이 밝히는 '베스트 스카우팅' 이야기

1997년 이병규, 2007년 봉중근, 2008년 오지환 '최고의 선택'

2014-07-21 23:03

▲지난해신인지명회의현장에서만난LG정성주차장(사진좌)과이종운당시경남고감독(사진우).사진│김현희기자
▲지난해신인지명회의현장에서만난LG정성주차장(사진좌)과이종운당시경남고감독(사진우).사진│김현희기자
[마니아리포트 김현희 기자]누군가는 이야기했다. 은퇴를 앞둔 선수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현실’이라고. 그러나 어디 프로야구 선수들만 그러하겠는가. 사회에서 은퇴하여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는 이들도 ‘현실’의 벽 앞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인생에서 시련은 있을지언정 실패는 없다. 은퇴라는 뜻의 영어 단어, ‘Re-tire’도 ‘타이어를 잠시 갈아 낀 이후 새로 달린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 이러한 표현이 어울리는 이가 있다. 선수 시절에는 큰 족적을 남기지 못했지만, 프로야구단 ‘프런트 직원’으로서 23년간 한 팀에만 머문 정성주 LG 육성팀 차장(46)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보성고-인하대를 졸업한 이후 1992년 LG 트윈스에 연습생 자격으로 입단했던 정 차장은 사실 고교 시절, 대붕기 전국 고교야구 대회에서 에이스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던 멤버 중 하나다. 1986년 당시 대붕기 시상자 명단에는 아직도 ‘우수투수상’의 주인공이 정성주 차장임을 말해주고 있다. 입단 이후에는 2군에서 다승왕을 차지하는 등 말 그대로 ‘앞날이 창창했던 유망주’였다.

‘23년 LG맨’, 정성주 차장이 밝히는 ‘베스트 스카우트 3’는?

그러나 정 차장의 현역 시절 추억은 말 그대로 짧고도 굵었다. 2군에서는 내일이 기대되는 유망주였지만, 그 흔하다는 1군 경기 공식 기록도 없었다. 시범경기를 통하여 간혹 모습을 드러내거나 1군 엔트리에 올라 등판 기회를 노려봤지만, 매번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당시를 떠올린 정 차장은 “1986년 대붕기 우승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부끄럽다.”라는 이야기를 꺼내면서도 “팀이 큰 점수 차이를 보일 때 간혹 등판할 기회가 주어지는 듯 싶다가도 점수 차이가 좁혀졌다. 그렇다면, 문병권 등 필승조를 투입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1군 기록이 없다.”라며 다소 아쉬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결국, 1993시즌 이후 최종준 당시 운영부장(전 LG 단장)은 그에게 프런트로 일해 볼 것을 권했다. 처음에는 “내가 LG에 온 것은 직원으로서가 아니라 선수로서 온 것이다.”라며 반대 입장을 보였던 정 차장도 1994시즌 직전에는 최 부장의 의견을 받아들여 ‘원정 기록원’으로 프런트 일을 시작했다. 바로 그 해, LG가 창단 후 두 번째 우승을 일궈냈다. 그리고 1997년에는 스카우트 팀으로 배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LG 스카우트 팀원 중 유일하게 정 차장이 10년 이상 한 팀에서만 유망주를 발굴하는 데 힘써온 것이다.

‘겁없는 신입’이었던 정 차장은 스카우트 업무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 놓으면서 뽑았던 선수에 대해 먼저 입을 땠다. 그 선수가 누구냐고 묻자 정 차장의 입에서 ‘이병규(등번호 9번)’의 이름이 먼저 나왔다. 입단 이후 맹타를 휘두르며, 신인왕을 차지했던 그는 지금도 여전히 현역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LG의 레전드’중 하나였다. 그러한 이병규를 뽑는 데 정 차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었다. 사정은 이러했다.

당시를 떠올린 정 차장은 “사실 당시 이병규와 더불어서 우선지명권 행사하는 데 유력한 후보가 바로 이경필(전 두산)이었다.”라고 설명하면서 팀 내에서는 이병규보다 이경필쪽에 더 무게를 두고 있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당시 주전 외야수였던 김재현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점과 군 복무로 인하여 공백이 예상될 것을 직감한 정 차장은 과감히 팀장에게 ‘이병규로 갈 것을 제안’했다. 처음에는 당황하는 듯했던 당시 팀장도 팀 내 상황을 종합하여 고려해 본 결과, 이경필이 아닌 이병규를 선택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다. 결국, 이 선택은 LG에 ‘20년 가까이 레전드로 불릴 수 있는 선수’를 영입하는 결과로 이어졌던 셈이었다.

정 차장은 ‘자신이 추천한 선수를 팀에서 받아들여 좋은 선수가 된’ 두 번째 예로 봉중근(34)을 들었다. 2007시즌을 앞두고 두 장의 우선 지명권을 행사할 수 있었던 각 구단에서는 앞다투어 자기 지역 내 유망주를 선택하기 위해 애를 썼고, 비교적 무난하게 선수들을 지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서울을 공동 연고로 했던 LG와 두산은 사정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특히, 당시에는 뽑을 수 있는 선수가 한정되어 있어 하루라도 빨리 움직이지 않을 경우 상대에게 좋은 재원들을 모두 빼앗길 우려가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두산에서 재빠른 움직임을 보인 결과는 이용찬(당시 장충고)과 임태훈(당시 서울고)의 계약으로 이어졌다. 순식간에 지역 내 유망주 둘에 대한 지명권을 잃은 LG로서는 고심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때, 정 차장은 유지홍 당시 스카우트 팀장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봉중근을 뽑자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몸 상태나 병역 문제 등을 생각하지 말고, 추후 ‘만들어 가는 과정 속에서’ 선수 하나를 완성하자는 것이 정 차장의 생각이었다. 고심 끝에 유 팀장은 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LG는 김유선과 함께 봉중근을 1차 지명권자로 내세우며 이용찬-임태훈을 잃은 아쉬움을 달랬다. 결과적으로 봉중근의 영입은 향후 LG의 마무리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었다는 점에서 호재로 작용했던 셈이었다.

오지환을 뽑았을 때에도 적지 않은 이야깃거리가 있었다. 당시 LG가 염두에 두었던 1차 지명 후보군은 이학주(현 탬파베이)였다. 그러나 오지환의 잠재 가능성을 본 정 차장은 오지환에게 지명권을 행사할 것을 조언했고, 때마팀 이학주의 시카고 컵스행이 결정되자 이번 제안 역시 받아들여졌다. 이렇게 정 차장의 조언으로 선택된 세 선수는 현재 LG의 기둥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뽑은 좌완 임지섭과 외야수 배병옥 역시 정 차장의 의중을 김현홍 팀장이 받아들인 결과였다.

물론 원했던 선수를 뽑지 못한 아쉬움도 있다. 그 중 일부 선수들은 현재 다른 팀에서 스타 플레이어로도 활약 중이다. 이에 대해 정 차장은 “아쉬움은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렇게 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옳았고, 당시 팀장님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결국은 개인의 시각 차이였을 뿐이다.”라며 덤덤하게 옛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 2편, ‘정성주 차장이 밝히는 스카우트 철학’으로 이어집니다 -

[eugenephi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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