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러한 ‘호국 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한화 이글스는 지난 6일,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밀리터리 데이 행사’를 진행했다. 넥센 역시 오는 8일, ‘호국 영웅’인 이희완 소령(2002년 제2 연평해전 참전용사)을 시구자로 내정했다. 이러한 이벤트를 통하여 ‘나라를 지키는 이들이 있어 야구팬들이 안심하고 야구를 즐길 수 있음’을 알린다면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셈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상무 야구단’은 국방과 야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에 눈여겨볼 만하다.
한국전쟁부터 시작된 ‘상무 야구단’의 역사
상무 야구단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한국 전쟁’이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한국야구는 ‘중학야구(현재의 고교야구)’의 역사와 함께했다. 1947년, 청룡기 대회 최우수 투수상을 받았던 경남중학교(경남고등학교 전신) 장태영을 비롯하여 '아시아의 철인' 박현식, 서울대학교 상대 출산의 이용일(전 KBO 총재 대행) 등이 이 시기에 활약했다. 이들은 전쟁이 끝나지 않았던 1953년 초에 창단된 '육군 경리단 야구부'의 일원이기도 했다. 또한, 공군에서도 KBO 초대 심판위원장을 역임한 이기역씨를 필두로 야구부를 꾸렸다. ‘상무 야구단’의 모태는 이렇게 만들어진 셈이었다. 전후에는 제법 많은 ‘실업야구 스타’들이 입대했는데, 부산고의 샛별 김소식(전 대한야구협회 부회장)을 비롯하여 한동화(전 쌍방울 감독)등이 해병대와 육군 야구단에 합류하여 명승부를 연출하기도 했다.
공군 성무 야구단은 창단과 해체, 그리고 재창단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스타를 배출한 바 있다. ‘불사조’ 박철순도 그 중 하나. 연세대학교 75학번인 그는 대학 재학 도중 군 문제로 인하여 공군 성무에 입대하였는데, 1978년 제28회 백호기 대회에서 선발로 등판하여 팀의 2-0 승리를 이끈 바 있다. 당시 맞대결 상대가 모교 연세대였다는 점, 그리고 선발로 나선 이가 ‘속구 투수’ 최동원이었다는 사실도 꽤 흥미로운 부분이다. 이 외에도 MBC 청룡(LG 트윈스 전신)의 스타 플레이어였던 ‘득점왕’ 이광은을 비롯하여 롯데 원년 멤버였던 김정수, 권두조, 차동열 등이 모두 성무를 전역했다.
육군과 해병, 그리고 공군 등으로 대변됐던 군 야구팀은 1984년에 상무 야구단으로 통합/운영됐다. 이후에도 많은 이들이 상무 야구단 입대를 통하여 기량 향상과 군 복무 해결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애를 썼지만, 적어도 2000년대 까지만 해도 이에 대한 비중을 너무 가볍게 봤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다 2004년 9월, 그 유명한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이 터지면서 뒤늦게나마 각 구단들이 상무 야구단에 대한 ‘전략적인 접근’을 시작했다. 이러한 영향 때문인지, 이제는 상무 야구단도 ‘1군 출신 선수들’이 제법 입대하는 것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특히, 상무 입단을 통하여 기술과 멘탈적인 측면에서 모두 향상하는 모습을 보인 선수들이 많았다는 점은 모든 프로야구 선수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53년 육군 경리단 야구부 창설 이후 현재 상무 야구단까지 근 60년 동안 약 1,000여 명의 야구 선수들이 전투복을 입었다. 그리고 이들 중 일부는 야구 감독이나 KBO 사무총장 등의 역할을 자임하며 한국야구의 기반을 다졌고, 3년 연속 홈런왕을 바라보는 선수(넥센 박병호)와 느린 볼을 가지고도 팀의 에이스로 성장한 이(두산 유희관)를 배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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