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현진이 연속 안타와 희생 플라이로 실점하자 매팅리 감독은 즉각 교체 카드를 꺼냈다. 이때 까지만 해도 류현진은 7과 1/3이닝 1실점이라는 완벽에 가까운 투구로 물러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류현진은 퍼펙트 게임은 고사하고 승리투수라는 작은 꿈도 이루지 못할 뻔했다. 류현진의 뒤를 이어 등판한 브라이언 윌슨이 볼넷 이후 해밀턴에게 중전 2루타를 맞아 류현진의 책임주자 2명을 모두 홈으로 불러들였기 때문이었다. 순식간에 류현진의 자책점은 3점이 됐다. 이어 추가 볼넷을 내줘 만루를 허용한 윌슨은 급하게 켈리 젠슨으로 교체되어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류현진의 승리마저 날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젠슨이 필립스를 삼진으로 잡아내면서 급하게 불을 껐고, 9회에도 불안하게 경기를 운영한 끝에 어렵사리 세이브를 챙겼다. 결과적으로 LA 다저스의 구원 투수들은 류현진의 자책점 숫자만 올려 주었을 뿐, 정작 자신들의 해당 경기 평균자책점은 0을 유지했다.
불안한 마무리, 2000년대 초반과 닮았네!
이를 두고 야구팬들은 ‘LA 다저스 불펜 투수들이 분식 회계를 한다.’라며 비아냥거리기까지 한다. 적시타를 내어 준 장본인은 불펜에 있지만, 그 책임은 모두 앞선 투수에게 넘어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월드시리즈 우승을 노린다는 LA 다저스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까지만 해도 젠슨이 버틴 다저스 마무리는 리그에서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던 보직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28일 현재, LA 다저스의 마무리는 15세이브를 거두는 동안 평균자책점 3.91을 기록중이며, 한때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풀타임 마무리로 뛰었던 윌슨은 7.56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고개를 숙인 상황이다.
사실 마무리의 안정화 없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운 법이다. 특히, 단기전에서는 한, 두 점 차의 긴박한 상황 속에서 ‘최후의 보루’로 여겨야 할 A급 마무리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래서 1990년대 후반에서부터 2000년대까지 LA 다저스는 늘 ‘가을 야구’와는 인연이 없는 팀이었다.
당시 LA 다저스는 지금과 많이 닮아 있었다. 박찬호가 에이스로 건재함을 과시했고, 마이크 피아자, 라울 몬데시, 에릭 케로스, 에릭 영 등이 버틴 타선도 만만치 않았다. 이들은 추후 게리 셰필드, 숀 그린, 토드 헌들리, 마크 그루질라넥 등으로 교체되면서 꽤 짜임새 있는 타선을 구축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렇게 괜찮아 보였던 다저스에는 ‘꾸준히 제 몫을 다 해 주는’ 마무리 투수가 없었다. 특히, 박찬호가 본격적으로 풀 타임 선발로 나섰던 1997년에는 토드 워렐이 마무리 역할을 맡았는데, 당시 워렐은 35세이브를 거두는 동안 무려 5.28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워렐이 블론세이브를 기록했던 경기들 중에는 박찬호 선발 등판 경기도 있었다. 그래서 국내 팬들에게는 ‘안타까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워렐 이후에는 국내에서 유명세를 탔던 ‘제프 쇼’가 등장했다. 1998년에 25세이브, 평균자책점 2.55를 기록하며 제 몫을 다 했던 쇼는 이듬해에도 34세이브(평균자책점 2.78)를 기록하며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2000년을 기점으로 점차 하락세에 접어든 쇼는 2001시즌, 43세이브를 거두는 동안 3.62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것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마지막 두 해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3점대 미만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지 못했다.
그나마 다저스가 1996년 이후 다시 가을잔치를 맞이했던 것은 무려 8년 뒤인 2004년의 일이었다. 이 당시 마무리는 선발에서 보직을 전환했던 ‘사이영상 수상자’ 에릭 가니에였다. 마무리가 안정되고 나서야 다시 가을잔치에 나섰던 셈이었다. 다만, 지금의 다저스는 2004년이 아닌, 1990년대 후반 혹은 2000년대 초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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