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22(토)

야구

故 김동엽 감독을 통해서 본 '퇴장의 미학(?)'

의도적으로 퇴장거리를 만들어 '퍼포먼스'를 선보인 '괴짜 감독'

2014-05-25 19:21

▲2,000만관중돌파기념당시MBC청룡유니폼을입었던LG선수단.그역사속에김동엽감독이있었다.사진│LG트윈스
▲2,000만관중돌파기념당시MBC청룡유니폼을입었던LG선수단.그역사속에김동엽감독이있었다.사진│LG트윈스
[마니아리포트 김현희 기자]경기가 한창인 그라운드에서 ‘퇴장’이 일어났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적어도 야구에서는 퇴장을 당한 당사자가 자의든 타의든 간에 그라운드를 떠나 있어야 한다. 이는 선수나 감독, 코칭스태프 모두에게 해당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사안의 경중을 따져 징계를 내리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면서도 합법적인 절차다. 그래서 국내/외를 떠나 그라운드에 있는 이들은 모두 ‘퇴장’을 당하지 않기 위해 야구 규칙이 허용하는 내에서 최선을 다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감독이 판정에 대한 어필로 인하여 퇴장을 당하면 어떠한 조치가 내려질까. 이 역시 사건의 경/중을 따져봐야겠지만, 국내의 경우 퇴장을 당한 당사자 전원에 대해서 다음날 혹은 한국 야구 위원회(이하 KBO)가 공고한 날짜에 상벌위원회가 소집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징계 여부와 수위를 결정한다. 이러한 점은 메이저리그와는 사뭇 다르다. 메이저리그 역시 퇴장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서는 사무국 차원의 징계를 비롯하여 필요시 선수협의회 차원에서 자체 징계를 내리는 경우도 있지만, 감독의 퇴장에 대해서는 해당 경기를 끝으로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라운드에서 발생해서는 안 될 문제를 저질렀거나 ‘주먹다짐’을 하는 경우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보통 심판의 판정이 자기 팀에 불합리하게 여겨졌다고 판단됐을 때에는 곧바로 감독이 그라운드에 나서는 것이 일반적이다.

‘퇴장의 미학(?)’을 알려 준 이, 故 김동엽의 ‘추억’

이 때문일까. 메이저리그에서는 감독의 퇴장을 구경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이끈 명장 바비 콕스 감독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많은 158회의 퇴장을 당했다. 그러나 대부분 해당 경기에서의 퇴장에서 그쳤을 뿐, 물리적인 충돌이 있지 않은 이상 감독이 퇴장당한다고 해서 징계를 받는 일은 드물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무조건 상벌위원회를 소집해 제재 조치를 취하는 국내와는 분명 다른 모습이다. 감독의 어필과 퇴장도 야구의 일부분이자 퍼포먼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셈이다.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라운드 내 분위기는 여전히 ‘경직되어 있다.’라고 보는 것아 맞다.

그런 점에 있어서 ‘퇴장의 미학(?)’을 알려 주고 떠난 이가 있다는 사실은 현 시점과 맞물려 좋은 교훈이 된다는 점에서 참고할 만하다. 지금보다 더 야구장 분위기가 경직됐을 1980년대에 이러한 간 큰(?)일을 자주 벌였다는 것이 상상이 되지 않을 법하지만, 그는 한 단계 앞선 모습으로 프로야구에 ‘엔터테인먼트’ 적인 요소를 가미하기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한 이였다. ‘빨간 장갑의 마술사’로 불렸던 故 김동엽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생전 김동엽 감독은 ‘괴짜’로 불릴 만큼 특이한 행보를 보였던 이였다. 의도적으로 경기 전에 심판들의 양해를 구한 다음, 일부러 ‘퇴장’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그러한 김동엽의 ‘배짱 있는 항의’에 팬들은 손뼉을 치며 웃었고, 이는 그라운드에서 일어났던 ‘작은 변화’이기도 했다. 하지만, 김동엽 감독은 한 술 더 떠 아예 잠실구장 그라운드에서 치어리더들과 춤을 추며 팬들에게 더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후 MBC 청룡에서 퇴단한 그는 서울방송사(SBS)가 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하면서 또 다시 팬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공중파로 프로야구가 중계됐던 1990년대에 SBS 텔레비전 채널에서 프로야구 해설을 하는 김동엽 감독의 모습을 찾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뿐만 아니라, 각종 시트콤과 오락 프로그램에도 출연하여 특유의 ‘끼’를 발산하기도 했다. 생전 그의 모습을 기억하는 박영진 상원고 감독은 “김 감독님은 삼겹살을 구워 드실 때도 정장 차림으로 홀로 식탁에 앉아 소주 한잔과 함께 ‘폼 나게’ 고기를 구워 잡수셨던 분이다.”라며 범상치 않은 그의 모습을 묘사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자신의 자서전 격인 ‘그래, 잘라라 잘라!’라는 제목의 저서를 집필했다.

하지만, 김 감독의 말년은 불우했다. SBS 야구 해설위원에서 물러난 이후 경제적 어려움을 겪음과 동시에 가정불화로 부인과 별거하던 중 1997년 4월, 서울 용산의 독신자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사망 전까지 누구도 그의 행적을 알 수 없을 만큼 그는 외로이 세상을 등졌다. 마지막 가기 전까지 그는 “내가 죽거든 관 속에 화투 한 모만 넣어 달라.”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한 ‘기인’ 김동엽 감독의 배짱 있는 모습이 현재의 프로야구 ‘감독 퇴장에 따른 징계 여부 결정’ 상황과 맞물려 오묘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으니, 이 또한 시대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겠다.

[eugenephi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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