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구 에이스들을 보유(서울고 최원태, 용마고 김민우)한 두 학교의 만남은 의외로 서울고의 11-3 대승으로 끝났다. 오랜 기간 야구 명문으로 자리 잡아 왔고, 많은 프로 선수들을 배출한 서울고였지만, 이번 황금사자기 우승은 개교 이래 처음이었다. 또한, 김동수(넥센 코치)를 앞세워 대통령배와 청룡기를 제패했던 1985년 이후 무려 29년 만에 전국 무대 우승을 맛본 셈이었다. 투구 수 제한이라는 변수 속에서 에이스를 뒷받침할 만한 투수들의 유무는 결승 무대 승패를 판가름하는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김동수, 이용호, 이형종의 모교, ‘우승의 한을 푼 서울고의 특별한 사연’
사실 서울고는 개교 이후 수많은 프로 선수들을 배출한 ‘스타 플레이어의 산실’이었다. 같은 강남 지역의 경기고와 휘문고에 비해 야구부 역사가 짧아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서울고에는 ‘공부도 잘하고 야구도 잘하는’ 선수들이 제법 있었던 곳이기도 했다. 한때 괴물타자로 불리며, OB 베어스(두산 베어스 전신)의 연고지 우선 지명을 받았던 추성건 자양중 감독은 “사실 내가 모교(서울고)에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고입 선발고사 시험 성적이 180점 이상이었다.”라며 흡족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원년 멤버 중에는 OB 베어스에서 전천후 투수로 활약했던 선우대영이 서울고를 졸업했다. 그는 1976년 봉황대기 대회에서 모교를 16강까지 올려놓은 공로를 인정받아 우수투수상을 받았고, 2년간의 짧고 굵은 프로 생활을 경험하면서 11승 12패, 평균자책점 3.61을 기록했다. 은퇴 이후 미국 이민을 선택했고, 현재에는 애틀랜타에 거주중이라고 한다. 애틀랜타 교민들 사이에서 ‘선우대영’을 모르면 간첩이라는 소리까지 들려 올 정도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서울고가 낳은 최고의 스타는 단연 김동수 넥센 코치였다. 1984년 대통령배와 봉황대기에서 MVP에 오르며 고교 최대어로 손꼽힌 김동수는 이듬해에도 대통령배 2연패와 청룡기 제패를 이끌며 또 다시 MVP에 올랐다. 2년간의 짧은 기간 동안 네 번의 MVP를 수상한 김동수는 1990년 LG 입단 이후에도 맹활약하며 신인왕에 오르기도 했다. 포수라는 힘든 보직에도 불구, 그는 무려 20년간 그라운드를 누비며 통산 타율 0.263, 1556안타, 202홈런, 871타점을 기록했다.
김동수 이후에도 박준수(전 KIA), 구자운(전 삼성), 박재상(SK), 배힘찬, 이보근(이상 넥센) 등이 등장하면서 프로 입단을 선택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서울고의 ‘트레이드 마크’는 단연 에이스들의 존재였다. 특히, 2006년 이후에는 꾸준히 에이스들을 배출하면서 각지에서 제 몫을 다 하는 선수들이 등장했다. 2006년에는 홍익대 입학을 선택한 김대우(넥센)와 졸업 이후 곧바로 프로로 직행한 임태훈(두산)을 배출했고, 2007년에는 ‘눈물의 역투’로 유명세를 탔던 이형종(LG)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듬해에는 안치홍(KIA)과 함께 모교를 이끌었던 좌완 최성민(LG)이 등장했고, 2009년에는 2학년부터 에이스로 제 몫을 다 했던 임정우(LG)가 등장했다. 같은 시기에 추후 연세대로 진학한 이후 대학 최대어로 손꼽혔던 이인복(롯데)이 나타난 것도 주목해 볼 만하다. 임정우 이후에도 신동훈(LG), 장현식, 배재환(이상 NC) 등이 ‘서울고 에이스 계보’를 이으면서 프로에 입문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서울고를 졸업했지만, 정작 서울고의 전국대회 우승은 올해 황금사자기 대회 이전까지 겨우 5번에 불과했다. 그나마 네 번은 김동수가 버티고 있었던 1984~85년에 집중되어 있었고, 이후 29년간 그들은 전국무대에서 이렇다 할 힘을 쓰지 못했다. 동문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좋은 선수들이 집중되었음에도 불구, 그 힘이 ‘엉뚱한 곳’에 발휘된 경우도 분명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승의 한을 푼 서울고 선수들과 동문의 심정은 어떠했을 것인지 능히 짐작하고 남을 만하다. 그리고 앞선 선배들이 하지 못한 것을 성취한 에이스 최원태와 우수투수상 수상자 박윤철의 향후 행보를 지켜보는 것도 자못 흥미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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