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듯 해외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1세대 선수들’은 조국의 명예를 걸고 타국에서 ‘죽기 아니면 살기’로 야구에 메달렸고, 그 모습을 본 일본 야구팬들의 눈빛도 ‘경멸’에서 ‘존경’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후 한국 프로야구도 많은 질적 성장을 이루어내며 적지 않은 해외파 스타들을 탄생시켰지만, 장훈-백인천때와 같이 강렬함을 보인 이는 드물었다. 특히, 투수 부문에서는 ‘일본 프로야구 진출 2호 선수’인 이원국 이후 1990년대 후반까지 이렇다 할 모습을 드러낸 이가 없었다.
‘돌직구’ 오승환, ‘세이브 타이틀 홀더’ 꿈은 아니다!
그러나 1996년부터 ‘국보급 투수’ 선동열(현 KIA 감독)이 일본에 진출하면서부터 상황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고야의 태양’이라 불리며 주니치의 수호신으로 거듭났던 선동열은 일본 진출 2년 만에 1승 1패 38세이브, 평균자책점 1.28을 기록하면서 입단 첫 해의 부진을 말끔하게 씻어냈다. 당시 그가 기록한 38세이브는 ‘대마신’ 사사키 가즈히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리그 공동 1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만약에 당시 일본 프로야구가 세이브 포인트(세이브수와 구원승수의 합계)에 의한 ‘최우수 구원투수’ 시상을 하지 않았다면 세이브 부문 공동 1위 자격으로 구원투수 타이틀 홀더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주 : 이후 일본 프로야구는 2005년부터 해당 상을 폐지하고, 다시 최다 세이브 투수 수상제도로 변경했다).
선동열의 활약에 영향을 받았던 후배 투수들도 호기롭게 일본 무대에 도전했다. 물론 성공 사례는 이상훈, 임창용 등 주로 마무리로 활약했던 선수들에 제한됐던 것도 사실이었다. 반대로 생각해 본다면, 일본 프로야구의 가장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들 중 국내 선수들이 많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중심에 또 다른 선수가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돌직구’ 오승환이 그 주인공이다.
국내 무대 9시즌 동안 28승 13패 277세이브, 평균자책점 1.69를 기록한 오승환은 말이 필요 없는 국내 최고의 마무리 투수였다. 특히, 제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신인왕 수상 직후 국제무대에 뛰어 든 선수답지 않은 투구 내용으로 상대 타자들을 압도했던 경험이 있었다. ‘국제 무대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는 선수’라는 평가를 일찌감치 받았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특히, 2011년에 세운 ‘무패 구원왕’ 기록은 국내 프로야구에서 오승환 단 한 명만이 보유하고 있으며, 이 때를 기점으로 일본 진출 직전까지 3년 연속 팀을 ‘통합 챔피언’으로 이끌었다. 그래서 오승환의 일본 진출 소식이 전달됐을 때 그의 성공 유무에 아무런 의문을 제기하지 않은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물론 그는 일본 진출 초반, 잠시 애를 먹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적응 과정을 마친 그는 최근 9경기에서 무실점을 기록하면서 시즌 7세이브를 마크하고 있다. 한때 5점대를 오갔던 평균자책점도 5일 현재 2.08로 떨어뜨렸다. 이 기간 동안 8경기 연속 무피안타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이다. 지금까지의 활약을 놓고 보면, 오히려 국내에 있었을 때보다 페이스가 좋다.
이제 남은 것은 과연 오승환이 1997년 선동열 이후 세이브 부문 1위를 차지할 수 있느냐의 여부다. 5일 현재 리그 1위 세이브 기록을 보유한 이는 9세이브째를 올린 히로시마의 외국인 투수 ‘캄 미콜리오’로서 오승환과는 불과 2개 차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다. 만약에 그가 리그 세이브 1위의 기록을 세운다면, 국내 투수로는 최초로 일본에서 ‘구원왕 타이틀 홀더’를 차지한 이로 이름을 남길 수 있다. 참고로 선동열 감독이 1997년 세이브 부문 공동 1위를 차지했을 때 최우수 구원왕 타이틀을 거둔 사사키는 3승 무패 38세이브, 평균자책점 0.90이라는 믿기 힘든 기록을 선보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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