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렇듯 추신수의 활약은 국내 야구팬들의 이목을 메이저리그에 집중시킬 수 있는 바탕이 되고 있다. 국내 야구팬들이나 선수들도 추신수가 해외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장면을 굳이 마다할 필요가 없는 셈이다. 여기에 세월호 사고와 같은 국가적 재난으로 실의에 빠진 국민들은 해외에서 낭보가 전해질 때면 이를 바탕으로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기도 한다.
추신수의 두 번의 IF가 실현됐다면?
이렇듯 타자로 매일 경기에 나설 수 있는 추신수의 활약은 에이스 류현진(LA 다저스)의 등판과는 다른 매력을 지닌다. 중계방송을 틀 때마다 어쨌든 한국 선수를 볼 수 있다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두 선수가 인터리그 등을 통하여 마주할 수 있게 된다면 그 재미는 두 배가 된다. 다른 리그의 두 선수가 최후의 무대(월드시리즈)에서 만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는 법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추신수와 관련한 진로가 지금과 같지 않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미 그는 부산고 2학년 시절부터 좌완 에이스로 활약하며 모교를 대통령배 2연패로 이끈 경험이 있던 유망주였다. 연고팀 롯데가 그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은 그래서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만약'이라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미래를 가정했을 때 쓰는 표현이지만, 그가 만약에 해외 진출을 고사하고 국내에 남았다면 어떠한 일이 일어났을까. 적어도 지금과 같은 좌타자로서의 면모는 보여주지 못했을 것이다. 롯데 스카우트 팀도 그를 '미래의 좌완 에이스'로 손꼽았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동기생 이대호와 함께 '좌-우 원투펀치'를 이루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투수로 지명을 받았던 이대호도 사실 타자로 전향하면서 팀의 간판으로 거듭난 바 있다. 추신수 역시 같은 절차를 밟았다면, 롯데는 미래의 3, 4번 타자를 동시에 얻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반대로 가정해 보면, 지금과 같은 성공을 생각지 못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런데 추신수를 향한 '가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시애틀로 입단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추신수 본인도 '투수'로 활약할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그의 포지션은 '외야수'였다. 짐 콜번 당시 극동아시아 스카우트는 그의 '빠른 발'에 주목을 했던 것이다. 결국, 그는 '좌완 에이스'로서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지금의 '5툴 플레이어'로 거듭나게 됐다. 만약에 그가 시애틀에서 투수로 활약했다면 어땠을까. 물론 '투수 추신수'도 메이저리그에서 통했을 수 있다. 입단 당시 그가 기록했다는 빠른 볼 최고 구속은 무려 94마일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때에 따라서는 '타자 추신수'보다 메이저리그 입성 기간이 짧았을 수 있었고, 트레이드될 일도 없었을 수 있다.
그러나 사실 2000년 이후 메이저리그에 도전했던 이들 중 한 번이라도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밟은 이는 조진호, 김선우, 김병현, 이상훈 정도였다. 그만큼 메이저리그에서 투수로 성공하기란 상당히 어려웠고, 그나마 마이너리그 계약을 통하여 미국 무대에 도전했던 투수들 중에는 아직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이가 없었다. 이들 중 일부는 다시 국내로 돌아왔다. '투수 추신수'도 이러한 절차를 밟을 가능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현재의 추신수는 '두 차례 선택의 갈림길'에서 자신의 길을 걸었고, 그것은 현재 '메이저리그 최고의 리드오프'라는 타이틀을 차지하는 데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 더 큰 행운은 적어도 7년 동안 '추신수의 가장 좋았을 때 모습'을 꾸준히 볼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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