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넥센 타선이 무서운 것은 이들 중 한 명이 빠지더라도 그 대체자원이 많다는 데에 있다. 행여 강정호가 예정대로 올 시즌을 끝내고 해외로 간다 해도 김민성이 유격수 자리로 복귀하면서 3루 요원을 윤석민이나 서동욱 등으로 메울 수 있으며, 포수 허도환이 부상으로 빠지면 로티노 혹은 박동원이 그 뒤를 받칠 수 있다. 이쯤 되면 과거 ‘유니콘스 왕조’가 탄생됐던 2000년대를 떠올릴 법하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 ‘유니콘스의 황금시대’를 열었던 이들이 대부분 지금도 넥센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선수단이나 코칭스태프에 대한 변화는 불가피했지만, 이들을 뒤에서 지원하는 프런트는 거의 예전과 동일했다. 10년간 현대 왕조를 이끌었던 DNA가 이제 빛을 발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순서였다.
넥센의 ‘가장 잘 나갈 때’를 못 본 한 사내의 이야기
이 중 홍보팀은 현대 시절에도 대부분 한솥밥을 먹었던 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김기영 팀장을 비롯하여 장내 아나운서를 겸하는 ‘넥센 홍보팀의 꽃’ 김은실 대리 등이 그러하다. 이들 모두 팀이 어려웠을 때에도 이직을 생각하지 않고 끝까지 남아 소속 구단을 안팎으로 ‘예쁘게’ 보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 바 있다. 그리고 당시의 노고가 지금의 ‘메인스폰서 계약’이라는 형태로 나타났고, 이는 곧바로 성적으로 이어졌다. 현재 넥센이 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인고의 세월’을 잘 이겨낸 덕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렇게 넥센이 잘 나가는 모습을 못 보는 이가 있다. 그 역시 넥센이 가장 어려웠을 때 구단을 지키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선수들을 지원했던 이였다. 4년 전, 젊은 나이에 암으로 유명을 달리했던 故 이화수 대리가 그 주인공이다. 생존해 있었다면, 서른여섯의 젊은 나이를 바탕으로 넥센을 위해서 힘써 일해 줬을 이였다.
생전 그는 ‘히어로즈’의 이름으로 펼쳐지는 작은 행사에도 모습을 드러냈던 ‘열정적인 야구인’이었다. 초청하는 입장에서도 ‘설마 히어로즈 직원이 바쁜데 올 수 있겠느냐?’라며 반신반의했지만, 이 대리는 어김없이 등장하여 보는 이들을 놀라게 했다. 행여 참석을 못 하게 되면, 전화나 이메일로 양해를 구하는 세심함까지 선보였다고 한다. 이렇게 그는 ‘그라운드의 조연배우’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최선을 다한 이였다. 또한, 선수단 및 기자단과의 조율도 기막히게 수행하면서 모든 이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는 몇 안 되는 인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평가에 이 대리는 손사래를 쳤다. “히어로즈 직원이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며 자신이 주인공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모습을 비추기도 했다.
또한, 그는 결혼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이 소속된 홍보팀에 ‘자신의 결혼과 관련한 보도 자료를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이에 필자는 “구단에 소속된 일반 직원 누구라도 결혼하면 바로 보도 자료를 내는 것이 관례인데 왜 그것을 안 하려 드느냐?”라고 질문한 바 있다. 이에 이 대리는 “저보다는 히어로즈가 주인공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며 끝까지 구단을 생각하는 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김기영 팀장은 이 대리의 화촉 소식에 대한 보도 자료를 냈고, 이에 필자를 비롯한 많은 이들도 이를 기사화하여 이 대리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대개 이 대리의 사람을 얻는 마음은 이와 같았다. 당시를 떠올린 이 대리는 “내가 한 것도 없는데, 부끄럽다.”라는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그렇게 어려웠던 2009시즌을 마치고, 메인 스폰서 없이 운영되던 ‘히어로즈’는 넥센 타이어를 만나 ‘넥센 히어로즈’로 재탄생됐다. 해당 소식을 들은 이 대리가 누구보다도 기뻐했던 것은 두말할 나위 없었다. 다만, 당시 그가 ‘암’이라는 중병에 걸렸다고 생각하지는 못했을 정도였다. 시즌 끝날 때까지 ‘병가로 6월까지 그라운드를 비울 것 같다.’라는 말만 남겼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6개월간 아무도 모르게 투병 생활을 했던 이화수 대리는 2010년 6월 25일 오후 9시, 세상과의 작별을 고했다. 메인 스폰서 계약 체결 이후 구단 사정이 ‘좋아질 만’ 했을 때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그래서 필자를 비롯하여 이 대리를 아는 이들이 ‘조금만 더 살아 있었다면, 좋아진 구단 사정을 등에 업고 더 열심히 일했을 텐데’라며 안타까움을 표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제 넥센이 ‘현대 시절’의 영광을 재현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이때, 팀이 가장 어려웠을 때 ‘그라운드의 완벽한 조연 배우’ 역할을 했던 이가 있었음을 기억해 줬으면 한다. 지난해, 넥센이 서울 연고 이적 이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을 때, 이 대리가 살아 있었다면 그도 ‘껑충껑충’ 뛰면서 조용히 눈물 흘리지 않았을까. 그래서 더욱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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