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22(토)

야구

‘대쪽 같은 사나이’, 2군 감독 김기태의 '추억'

2군에서부터 경기 패해도 '늘 감독 탓'

2014-04-25 00:26

▲김기태감독의사임은다른팀선수들에게도큰충격으로다가왔다.사진│LG트윈스
▲김기태감독의사임은다른팀선수들에게도큰충격으로다가왔다.사진│LG트윈스
[마니아리포트 김현희 기자]김기태 전 LG 감독의 자진 사임을 놓고 많은 이야깃거리가 쏟아지고 있다. 항간에는 일부 선참급 선수들과의 불화설을 제기하고, 일부에서는 전년도 리그 2위, 시즌 3위를 차지한 팀 성적에 비례하지 않은 프런트의 지원에 실망감을 드러냈다는 이야기도 제기됐다. 이 모든 낭설들 중 사실로 드러난 사안은 없지만, 갑작스러운 김 감독의 사임은 여러 측면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물론 김 감독의 성격을 아는 이들은 ‘김기태답게 물러났다.’라고 이야기를 꺼내기도 한다. 하지만, 굳이 사임의 형식을 빌어 끝까지 자신을 희생시킬 필요가 있었느냐는 이야기도 꺼낼 법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계약 기간을 모두 채운 감독’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추세 속에서 전년도 포스트시즌 진출 약속을 지킨 감독마저 계약기간을 모두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더욱 놀라운 점은 김기태 감독 자진 사임이 오히려 다른 팀 선수들에게 더 큰 회자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도자 경력을 떠나 ‘같은 팀에서 한솥밥을 먹어 보고 싶은 사령탑’으로 김기태 전임 감독을 뽑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만큼, ‘형님 리더십’의 위력은 대단했다. 그러나 사실 김기태 리더십은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다. 모든 일에 대해 ‘선수 탓’을 하는 아니라 ‘감독 탓’으로 돌리고 오히려 선수들에게 힘을 부여하는 것이 전부다. 이러한 움직임에 선참급 선수들이 먼저 변화하기 시작했고, 선임들의 변화는 곧 젊은 선수들의 기량 향상으로 이어지게 됐다. 올 시즌을 앞두고 LG가 이렇다 할 보강 없이도 우승 후보로 손꼽혔던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대쪽 같은 사나이’, 2군 감독 김기태의 ‘강렬했던 첫 만남’

필자가 김 감독을 처음 만난 것은 2군 감독 부임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당시 필자는 휴일을 이용하여 2군 경기 관람 차 ‘구리 챔피언스 파크’를 찾은 일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김 감독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첫 인사에 “취재 오셨어요?” 라고 먼저 말을 걸었던 김 감독은 ‘단순 휴일 차원에서 야구 보러 왔다.’는 필자에게 “취재가 필요하시면 꼭 사무실에 알려 주십시오.”라고 말하고는 곧장 그라운드로 뛰어갔다. 그것이 김 감독과의 범상치 않은 첫 만남이었다. 2군 선수들이라 해도 사전 허락 없이 취재에는 응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30도가 넘는 7월의 무더위 속에 시작된 낮 경기는 의외로 많은 관중이 경기를 지켜보면서 꽤 흥미진진하게 진행됐다. LG가 상대한 팀은 2군 리그의 ‘끝판왕’ 경찰 야구단이었다. 강호를 만난 압박감 때문이었을까. 9회 말이 끝난 시점에서 양 팀의 스코어는 10-0으로 경찰 야구단의 압도적인 우위였다. 민병헌, 허경민(이상 두산) 등 당시 군 복무에 임했던 ‘1군급 선수들’의 맹타가 결정적이었다. 반면 LG는 이렇다 할 힘 한 번 써보지 못한 채 쓸쓸이 그라운드를 정리해야 했다. 당시 필자와 같이 경기를 지켜봤던 정성주 스카우트는 “2군 경기는 내일의 1군 선수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중점을 둬야 하기 때문에 경기 결과는 크게 필요 없다.”라고 전제하면서도 “어떻게 패했는지를 알아야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다.”라며 자신이 뽑은 선수들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바로 그때, 경기 직후 김기태 감독은 선수들을 불러 모아 그날 경기에 대한 리뷰를 하고 있었다. 큰 점수 차 패배에 화를 낼 법했지만, 김 감독은 짧게 할 말만 하고 나서는 바로 그라운드를 떠났다. 경기를 끝낸 나머지 선수들도 귀가하거나 휴식을 취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 하나 그라운드를 떠나지 않았다. 일부는 그라운드에서 개인 훈련을 하고, 일부는 코칭 스태프와 함께 군 입대 등과 관련한 상담을 받기도 했다. 이렇게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간에 자연스러운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면서 LG 2군도 ‘내일’을 기약할 수 있게 됐고, 이때부터 LG에 서서히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듬해, 그 ‘2군 감독’이었던 김기태는 박종훈 전임 감독의 사퇴와 맞물려 후임 사령탑에 올랐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LG 호(號)를 이끌게 됐다.

‘대쪽 같은 사나이’ 김기태와 관련하여 필자가 늘 안타까워했던 점도 사실 여기에서부터 시작됐다. 늘 ‘감독 탓이다.’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때로는 ‘지나친 자책’으로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설령 특정 선수의 판단 미스로 인하여 패배로 이어져도 김 감독은 늘 ‘감독이 잘못해서 졌다.’라고 이야기할 뿐, 해당 선수에 대한 평가는 웬만한 경우를 제외하면 자신의 입을 통하여 전달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LG가 김 감독의 사표를 100% 수리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 기인한 바가 클 것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남아있는 자들’이다. 감독 대행 이후 팀을 이끈 조계현 수석 코치는 김기태 감독 자진 사임 이후 단 한 번도 팀을 승리로 이끌지 못했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그는 “감독 때문에 패했다.”라는 말로 안타까움을 대변한다. ‘자성의 목소리’를 내는 습관은 김기태 감독과 한솥밥을 먹은 코칭스태프들의 공통된 사항인 듯싶다.

[eugenephi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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