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1989년이 그의 전성기는 아니었다. 1990년 시즌 직후 그는 필라델피아 필리스 유니폼을 입게 되었는데, 이적 이후 그는 30세이브와 10승을 동시에 달성(12승 5패 30세이브)하면서 사이영상 투표 6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당시 그의 평균자책점은 2.34로 상당히 준수한 편이었다. 수준급 마무리 투수의 등장에 필라델피아 지역 야구팬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트라우마’로 마무리 보직을 내려놓은 자들의 안타까움
이후에도 그는 꾸준히 제 몫을 다했다. 1992시즌 29세이브에 이어 1993년에는 리그 3위에 해당되는 43세이브를 기록하면서 필라델피아의 클로저로 자기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그 기세를 몰아 필라델피아는 네셔널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월드 시리즈에 올랐다. 팀이나 윌리엄스 모두 부와 명예를 동시에 쥘 수 있는 기회가 생겼던 것이다. 그러나 윌리엄스는 1승 2패로 팀이 열세에 놓였던 4차전에 등판했으나 14-9의 리드를 지키지 못한 채 패전의 멍에를 써야 했다. 하지만, 그의 불운은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6차전에서도 6-5로 앞선 상황에서 등판했지만, ‘월드시리즈의 사나이’ 조 카터에게 역전 3점 홈런을 맞으면서 두 번째 블론 세이브를 기록해야 했다. 결국, 그는 이 한 방으로 두 번 다시 예전과 같은 ‘A급 클로저’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트라우마로 마무리 보직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윌리엄스’의 경우였다.
국내에도 이러한 경우가 있었다. 선발과 중간계투 요원의 경계가 모호했던 프로야구 원년에는 삼성의 이선희 투수가 개막전과 한국시리즈에서 모두 만루 홈런을 맞으며 ‘비운의 투수’로 기록되기도 했고, LG의 수호신이었던 이상훈 현 고양 원더스 코치도 2002 한국시리즈에서 이승엽에게 동점 3점포를 허용했던 ‘가슴 아픈 기억’을 안고 있다. 굳이 은퇴한 선수들을 예로 들지 않아도 한신의 오승환이나 넥센의 손승락 등도 늘 세이브 상황에서 100% 성공을 한 것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빠른 시간 내에 이를 극복하고 다시 세이브 행진을 기록하느냐의 여부다.
다만, 한화의 마무리 자리는 여전히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는 모양세다. 시즌 초반에는 송창식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듯싶었지만 작년과 같은 힘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래서 한때 신인 최영환이 그 자리를 잇는 것 아니냐는 예측이 나왔지만, 정작 김응룡 감독의 선택은 김혁민이었다. 불펜 성적이 더 좋다는 사실을 믿은 결과였다. 그러나 김혁민은 1993년의 ‘미치 윌리엄스’와 같은 좋지 않은 경험을 많이 하면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지난 11일 넥센전을 시작으로 15일 KIA전, 19일 LG전 등 3경기 연속 실점하면서 블론세이브를 기록해 왔다. 지난 10일 NC전에서 세이브를 추가한 이후 단 한 번도 1이닝 이상 소화하지 못한 채 강판을 당해야 했다. 그러는 사이에 그의 ‘이닝 당 출루 허용률(WHIP)’은 무려 2.50에 이르렀고, 피안타율은 0.414에 달했다. 이미 한 차례 마무리 교체 카드를 꺼냈던 김응룡 감독으로서는 또 다시 골치 아픈 결정을 해야 할 판이다.
공교롭게도 한화가 상대했던 LG 역시 봉중근 등장 전까지 늘 ‘마무리’ 문제로 고민했던 구단이기도 했다. 때로는 해외에서 수입해 오기도 하고(오카모토 신야), 때로는 자체 수급(김광수, 우규민)을 통하여 타개책을 찾고자 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고, 트레이드를 통하여 이를 돌파해 보기도 했지만(이재영, 송신영) 역시 성공하지 못했다. 그만큼 마무리는 어려운 보직이며, 단 한 번의 트라우마로도 선수 생명을 좌우할 수도 있다. ‘선발이 무너져도 다시 경기를 회복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마무리가 무너질 경우 경기는 그대로 끝이 난다.’라는 다카하시 전 LG 투수코치의 조언은 바로 이러한 점을 잘 대변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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