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정작 이 당시 주목을 받았던 이는 따로 있었다. 2학년의 몸으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던 김선우(LG)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당시 활약으로 청룡기 MVP와 우수투수상을 독식했던 그는 3학년 진학 이후에도 대통령배 준우승을 이끌면서 또 다시 우수투수상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 당시 활약으로 고려대에 진학한 그는 재학 도중 보스턴 레드삭스와 계약을 맺으며 태평양을 건넜다. 그리고 당시 청룡기 1회전은 추후 ‘메이저리그’에서 만났던 이들이 대거 그라운드에서 한 판 대결을 펼쳤던 장(場)이기도 했다. 동갑내기 투수 서재응 역시 당시 광주일고 유니폼을 입었기 때문. 하지만 1라운드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휘문고의 7-5 완승이었다.
‘옛 메이저리거’ 4인방의 유달리 추운 ‘2014 시즌’
그러나 서재응의 광주일고는 이듬해 청룡기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전해 1회전 탈락의 아쉬움을 바로 달랬다. 그리고 3학년이었던 서재응은 우수 투수상을, 2학년이었던 김병현은 MVP를 받으며 말 그대로 ‘승승장구’했다. 또한, 1학년 멤버로 ‘덩치 큰 4번 타자’ 역할을 맡았던 최희섭도 팀 우승에 일조했다. 만약에 김선우의 휘문고가 준결승전에서 김민기(전 LG)의 덕수상고에 한점 차 패배를 당하지 않았다면, 결승 무대에서 만나는 것도 가능했을 일이었다. 그렇게 1995년 청룡기 역시 4명의 예비 메이저리거가 동대문 야구장에서 자신의 재능을 뽐냈던 사상 유래 없는 대회이기도 했다.
김선우와 서재응, 김병현과 최희섭의 공통점은 모두 메이저리그를 경험하면서 나름대로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다는 데에 있다. ‘써니’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김선우는 2001년 데뷔 이후 6년간 13승(13패), 개인 통산 5.31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고, 한때 몬트리얼 엑스포스(워싱턴 네셔널스 전신)의 촉망받는 유망주로 손꼽히기도 했다. 서재응 역시 뉴욕 메츠 시절, ‘컨트롤의 아티스트’라 불리며 메이저리그에서 ‘정점’을 맛보았던 이였다. 특히, 2005 시즌에는 생애 처음으로 2점대 평균자책점으로 시즌을 마감하는 등 여섯 시즌 동안 개인 통산 28승 40패, 평균자책점 4.60을 마크했다.
김병현은 앞선 두 명의 선배들보다 더 임펙트 있는 시절을 보냈다. 특히, 애리조나 시절에는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손에 넣기도 했고, 올스타에도 선정되는 등 마무리 투수로는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을 만큼 대단한 위용을 자랑했다. 이후 선발로 보직을 전환하면서 다소 부침을 겪기도 했지만, 2007 시즌에는 생애 첫 10승을 달성하면서 나름대로 제 몫을 다 한 바 있다. 그는 2007년을 끝으로 메이저리그에서 자취를 감추기 전까지 9시즌 동안 54승 60패 86세이브, 평균자책점 4.42를 마크했다. 그리고 김병현의 고교 1년 후배인 최희섭은 4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220안타(40홈런), 120타점, 타율 0.240을 기록했다. 낮은 타율에 비해 출루율은 0.349로 준수한 편이었기에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LA 다저스 시절에는 2번 타순에 배치되는 경우도 많았다.
이들 넷은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당시 한 자리에 모인 일도 있었다. 당시 김선우와 서재응은 모두 일본전에서 선발로 등판했다는 공통분모를 안고 있으며, 최희섭은 미국전에서 승부에 쐐기를 박는 3점 홈런을 터트린 바 있다. 김병현 역시 중간계투 요원으로 등장하여 나름대로 쏠쏠한 활약을 선보였다. 풍부한 메이저리그 경험이 국제 무대 호성적을 보장해 주는 밑바탕이 되었던 셈이었다.
다만, 이들 넷의 현 위치가 과거 영광에 비하면 너무 초라한 편이다. 물론 김선우, 서재응, 최희섭은 국내무대 유턴 이후에도 짧게나마 임펙트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올 시즌 시작 직후 서재응과 김선우는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난타를 당해야 했고, 김병현과 최희섭은 아직 1군 무대를 밟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에 외국인 선수들과 신진 세력들이 이들의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들 넷에게는 유달리 추울 수밖에 없는 2014 시즌이다.
[eugenephil@daum.net]
<저작권자 © 마니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