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후 두 콤비는 장채근이 1994년을 끝으로 해태 유니폼을 벗으면서 자연스럽게 결별 수순을 밟았다. 그리고 그는 전라북도를 연고로 탄생한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3년간 선수 생활을 유지한 이후 은퇴를 선언했다. 총 10시즌동안 1군 무대를 경험했던 장채근은 이 시기에 무려 여섯 번이나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했고, 세 번의 골든글러브 수상(1988, 1991, 1992년)과 한 번의 한국시리즈 MVP(1991년)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선배 선동열이 일본 프로야구를 거쳐 삼성 코치-감독을 역임하는 동안 그의 ‘짝꿍’과도 같았던 장채근은 이렇다 할 소식을 전달해 오지 못했다. 고향팀 해태-KIA에서 배터리 코치, 수석 코치, 육성군 코치 등을 두루 경험했다는 소식이 간간이 들려왔고, 2008년에는 서울로 연고를 옮긴 히어로즈의 초대 배터리 코치에 선임됐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다.
‘대학 야구의 새로운 바람’, 장채근 홍익대 감독 이야기
그리고 히어로즈 퇴단 이후 장채근은 또 다시 이렇다 할 소식을 들려주지 못했다. 한동안 ‘장채근’이라는 이름이 야구팬들의 뇌리에서 잊혀질 무렵, 또 하나의 소식이 전달됐다. 그가 2011년을 시작으로 홍익대학교 야구부 감독을 맡았다는 소식이 바로 그러했다. ‘홍익대’라면 장채근과는 크게 인연이 닿지 않았던 곳이었기에 주변에서는 그의 감독 선임을 두고 ‘의외’라고 이야기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광주상고(광주 동성고 전신)-성균관대를 졸업한 장채근은 홍익대 동문도 아니었으며, 아마와 프로를 통틀어 ‘감독’직을 수행해 본 경험도 없던 이였다. 그러나 굳이 이러한 점을 들지 않더라도 홍익대는 대학야구에서 크게 기지개를 펴지 못하는 팀이었다. 설령 감독 한 명이 바뀐다 해서 그 성적까지 오를 것이라 기대하는 이도 드물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장 감독 부임 이후 홍익대는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패배의식’에 젖어 있던 선수들이 승리의 맛을 알아갔고, 이는 곧 성적으로 나타났다. 물론 그 성적이 우승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지난해 춘계리그와 대통령기 대회에서 각각 준우승을 차지한 것만으로도 홍익대의 달라진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홍익대의 전국 무대 결승 진출은 2004년 대통령기 우승 이후 정확히 9년 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당시 준우승의 주역들은 어김없이 프로 지명을 받는 데 성공했다(넥센 김영광, KT 양효석/허정민, 한화 정광운, 두산 최용제).
홍익대의 돌풍은 타 대학들에게 ‘경계 대상 1호’로 떠오르기에 충분했다. 특히, 대학리그 최고의 ‘쓰리 펀치(윤수호-김정민-이창재)’를 갖춘 단국대도 이번 춘계리그에서 홍익대에 콜드게임 패배하는 아픔을 맛봐야 했다. 당시를 떠올린 단국대 김경호 감독은 “첫 경기가 중요한데, 다들 첫 경기를 풀어가지 못했다.”라고 전제하면서도 “홍익대가 상당히 강하다.”라며 범상치 않은 상대팀의 모습에 경계의 눈빛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평가에 장채근 감독은 한사코 “내가 한 일은 없다.”라고 손사래를 친다. 그러는 한편, “처음 부임했을 때 ‘이게 야구 팀 맞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선수들의 훈련량이 적었다. 그래서 스파르타식으로 선수들을 가르쳤고, 그것이 성적으로 나타났을 뿐이었다.”라며 모든 공을 선수들에게 돌리기도 했다. 이는 성균관대 출신 지도자들의 공통된 사항이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춘계리그 16강전에서 바로 자신의 모교인 성균관대와 맞대결을 펼쳤다는 사실이었다. 성균관대를 이끌고 있는 이연수 감독 역시 ‘데이터 야구’와 ‘스파르타식 훈련’으로 유명한 이였고, 장채근 감독과 동향이자 82학번 동기이기도 했다.
이 미묘한 맞대결의 승자는 홍익대였다. 홍익대는 4회 말 찾아 온 유일한 득점 찬스에서 3타수 3안타의 맹타를 퍼부은 이태훈(1학년)의 활약으로 결승 득점을 올렸다. 비록 8강에서는 경희대학교에 0-3으로 발목을 잡히며 준결승 진출에 실패했지만, 시즌 첫 대회 ‘8강’은 다음 대회를 기대하기에 충분한 성적이었다.
‘만년 하위팀’에서 대학야구의 다크호스로 떠오른 홍익대 야구부. 그 중심에는 홍익대에 새 바람을 불어 일으킨 장채근 감독이 있다는 사실만큼은 틀림없을 것이다. 그가 선수 시절 경험했던 ‘한국시리즈 우승 DNA’를 제자들에게도 전파할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자못 흥미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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