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데 국내의 경우는 미국과 또 다르다. 수도를 연고지로 삼고 있는 구단이 무려 3개(LG, 두산, 넥센)나 된다.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진 것 아니냐는 지적을 할 만하지만, 국내 인구의 25%가 거주하고 있는 서울의 시장 규모까지 무시할 수 없는 일이다. 특히, 넥센이 서울 서남쪽에 위치한 목동구장을 홈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되짚어 보아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서울 야구팬들은 잠실야구장에 한정하여 야구를 관전해 왔었다. 잠실야구장이 위치한 서울 동남쪽과는 정 반대에 위치한 곳에 신규 구단이 들어섰다는 점은 서울 야구팬들의 ‘잠재 수요’를 끌어들일 수 있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주사위 굴리기’의 주인공, 이상훈과 추성건
어쨌든 1990년대 당시, 서울을 연고로 ‘같은 구장’을 홈으로 사용했던 구단은 LG와 OB(두산의 전신)였다. 프로 원년부터 서울을 연고로 삼아 왔던 LG와 대전에서 출발하여 한발 늦게 서울에 입성한 OB는 탄생 과정부터 시작하여 하나부터 열까지 서로 다른 모습을 취해 왔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양 팀은 자연스럽게 ‘라이벌 구도’가 형성됐다. 특히, 양 팀이 잠실에서 맞대결을 펼치는 날이 오면, 응원 열기는 한일전을 방불케 했다.
같은 연고지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곧 ‘신인지명 회의’에서 서로 부딪힐 수밖에 없는 여건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특히, 연고지 우선 지명(1차 지명)에서 양 구단이 같은 선수를 염두에 두고 있으면 누구에게 우선권을 주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때 까지만 해도 양 팀에 놓인 해결책은 ‘주사위 굴리기’였다. 두 개의 주사위를 굴려 더 많은 숫자가 나오는 구단에 우선권을 주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방식의 최대 수혜자가 바로 LG였다. LG는 연고지 우선 지명일이 다가올 때마다 특정 직원을 시켜 주사위 굴리기 연습을 하는 등 남다른(?) 노력을 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1993년 신인지명회의에서는 ‘좌완 파이어볼러’ 이상훈이 등장하여 LG와 OB 모두 군침을 흘리고 있을 때였다. 누가 이상훈을 ‘모셔 가느냐’를 두고 많은 이야깃거리가 흘러나왔지만, 승자는 주사위 던지기에서 우위를 차지한 LG였다. 이 한 번의 선택으로 LG는 향후 ‘10승-30세이브’가 보장된 대들보를 손에 넣을 수 있게 됐다. 실제로 이상훈은 첫 해 9승을 기록하는 등 2004년 은퇴를 선언하기 전까지 71승 40패 98세이브, 평균자책점 2.56을 기록했다. 이 과정에서 25번의 완투와 8번의 완봉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한국형 샌디 쿠펙스’였던 셈이다. 은퇴 이후에는 록그룹 ‘WHAT’의 기타리스트 겸 리드 보컬로 활약하며 제2의 인생을 살다가 지난해부터 김성근 감독의 부름을 받고 고양 원더스의 투수 코치로 부임했다.
한편, 이상훈을 놓친 OB는 차선책으로 건국대 추성건을 선택했다. 건국대 시절 내내 ‘괴물타자’로 불리며 일간지에도 모습을 드러냈던 점을 감안한다면 매우 상식적인 선택이었다. 특히 그는 1992년 대학리그에서 이종범과 함께 모교 건국대의 두 차례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그 해 대학리그에서 두 번 우승을 차지한 것은 건국대가 유일했다.
그러나 프로 입단 이후 추성건은 대학 시절의 호쾌한 스윙을 좀처럼 보여 주지 못했다. 김인식 전임 감독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그는 OB-두산 시절 단 한 번도 100경기 이상 출전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부상까지 당하면서 그는 2000시즌을 앞두고 SK로 이적했다. 이적 첫 해에는 규정 타석을 채우지 못했지만, 3할 타율을 기록하는 등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1루수에서 3루수로 보직을 옮겼던 것도 주효했다. 그러나 그는 이듬해 다시 부상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채 서른둘이라는 젊은 나이에 은퇴를 선언했다. 2002시즌을 앞두고 김성근 당시 LG 감독이 현역 생활을 지속하자는 제의를 했지만, 이를 고사하고 모교인 서울고에서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한때 중국 세미프로리그에 소속된 ‘광동 레오파스’에서 기술 감독직을 역임했고, 현재에는 청원고 야구부에서 김상훈 감독을 도와 수석 코치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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