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22(토)

야구

비지오 HOF 탈락으로 본 미국 야구기자 협회의 '오판'

‘꾸준함의 가치’ 저평가, 'MLB 별 것 아니다'라는 주장에 힘만 실어준 꼴

2014-01-10 01:10

▲2014명예의전당에는매덕스,글래빈,토마스가오르면서비지오는또다시탈락의고배를마셔야했다.사진│MLB.COM캡쳐
▲2014명예의전당에는매덕스,글래빈,토마스가오르면서비지오는또다시탈락의고배를마셔야했다.사진│MLB.COM캡쳐
[마니아리포트 김현희 기자]지난 2009년, 김인식 한국야구위원회(이하 KBO) 기술위원장이 한화 이글스 감독을 맡았을 때의 일이다. 당시 김 감독은 총체적인 난국에 빠진 팀을 수습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결국 이전과 같은 호성적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투-타 모두 동반 부진에 빠졌던 것도 뼈아팠지만, 김 감독을 더욱 안타깝게 했던 것은 두 명의 외국인 선수, 토마스와 디아즈였다. 당시 마무리로 뛰었던 토마스는 자신의 투구에 만족하지 못하면서 2군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고, 여기에 아내의 병 간호까지 겹치면서 1군 복귀 시점을 늦출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작 김 감독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했던 선수는 외국인 타자 디아즈였다. 당시 김 감독은 “디아즈를 지명 타자로 쓸 수 없다 보니 수비로 내세워야 했다. 그런데 수비도 안 되는 저런 엉터리가 어떻게 메이저리그에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며 생각보다 메이저리그가 ‘별것 아닐 수 있음’을 이야기한 바 있다. 실제로 김 감독은 두 번의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메이저리거들로 가득 찬 미국과 베네수엘라를 차례로 격파하며 ‘한국야구’의 매서움을 톡톡히 보여준 바 있다. “메이저리그, 분명 대단하다. 그러나 그 이름값에 미리 주눅이 들 필요는 없다. 생각보다 대단치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라는 이야기가 설득력을 얻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꾸준함의 가치’를 저평가한 미국 야구기자 협회

그런데, ‘메이저리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별 것 아닐 수 있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근거 중 하나가 바로 ‘약물’에 있다. 메이저리그가 한창 호황을 누렸을 때 홈런 잔치를 벌였던 이들(베리 본즈, 마크 맥과이어, 새미 소사) 모두 ‘스테로이드 투약’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약물로 쓰인 기록에 큰 의의를 둘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기록만으로 보면 입성이 당연할 것으로 보이는 이들이 대거 고배를 마셨다. 특히, 통산 569개의 홈런을 기록한 라파엘 팔메이로 같은 경우 4.4%의 득표율로 입후보 자격을 영구 상실했다. 즉, ‘약물로 쓰인 기록은 의미가 없다.’라는 인식은 메이저리그에서 정론으로 받아들여지는 듯한 눈치다.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명예의 전당 투표권을 행사한 미국 야구기자 협회는 이러한 정론에만 너무 집착하여 중대한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이러한 약물의 시대에 한 팀에서 꾸준히 활약한 선수를 2년 연속 떨어뜨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크레이그 비지오(전 휴스턴)가 바로 그 비운의 주인공이다. 2년 연속 60% 이상의 높은 득표율을 보인 것에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약물과 관련한 일에도 비교적 자유로운 편에 속한다.


1988년 데뷔 이후 20년간 휴스턴에서만 활약했던 비지오는 은퇴 직전까지 매우 꾸준한 활약을 펼쳤던 몇 안 되는 이였다. 특히,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활약한 이후에는 단 한 번도 100안타 미만을 기록한 일이 없었다. 41세의 나이로 은퇴를 선언했던 2007년에도 그는 130안타를 기록하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데릭 벨(Bell), 제프 배그웰(Bagwell), 카를로드 벨트란(Beltran) 등 휴스턴의 ‘킬러 B’ 요원들이 차례로 은퇴하거나 팀을 떠나는 과정 속에서도 그는 꾸준히 팀을 지키면서 개인 통산 3,060 안타(역대 21위)를 기록했다. 또한, 그의 통산 타율(0.281)은 20년 선수 생활을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양호한 것으로 봐야 하며, 통산 홈런(291개), 타점(1,175점), 도루(414개) 모두 상당히 수준급이다. 이 정도만 놓고 보았을 때 은퇴 이후 그의 명예의 전당 입성을 당연시하게 여기는 것도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10년 이상 야구관련 직종에 종사했다는 미국 야구기자 협회는 끝내 그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의 탈락이 더욱 의외인 것은 3,000안타 이상을 기록한 28명 가운데 단 세 명만이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두 명은 ‘약물’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팔메이로와 ‘야구를 빌미로 도박을 한’ 피트 로즈다. 둘을 제외하면 대기록을 세우고도 탈락한 ‘유일 멤버’가 되는 셈이다. 투표권을 행사한 이들이 얼마나 ‘꾸준함의 가치’를 저평가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물론 비지오에게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을 수 있다. 민주주의 방식에 의한 투표는 가장 미국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구 세계랭킹 1위라고 자부하는 미국에서, 그것도 10년 이상 야구를 보아 온 144명의 인원이 최대 10명을 써넣을 수 있는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3,000안타의 주인공에게 한 표를 행사하지 않은 것은 정말 ‘의외’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메이저리그가 이름값에 비해 별것 아닐 수 있다.’라는 주장에 오히려 힘을 더 실어 준 셈이다.

[eugenephi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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