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년 시즌부터 해외에서 뛸 것이 확실시되는 오승환은 사실 ‘미국이냐 일본이냐’를 두고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는 듯한 모습이다. 그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마무리 투수’로서의 역할을 기대하는 구단이 생각 외로 많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협상의 열쇠는 오승환 본인이 쥐게 될 수도 있다. 이미 일본의 일부 언론에서는 ‘한신 타이거즈’의 내년 마무리 투수 단일 후보로 오승환을 점찍어 놓았다는, 다소 성급한 보도를 시행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포스트 마리아노 리베라’를 찾는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도 그에게 적지 않은 관심을 표명할 법하다. 묵직한 구위를 바탕으로 한, 시속 150km의 공을 사실 메이저리그 타자들도 잘못 친다. 이 점이 오승환의 몸값을 높여 주는 ‘경쟁우위’가 되기도 한다.
1998 방콕 아시안게임 ‘홍안 소년’ 박한이, ‘이제는 베테랑’
한편, 올 시즌을 끝으로 두 번째 FA를 선언하게 되는 박한이(34) 역시 시장에 직접 나와도 될 만큼 몸값이 오른 상태다. 특히, 한국시리즈에서 팀이 위기에 빠졌을 때 ‘클러치 능력’을 선보이며 필요할 때 타점을 냈던 장면은 그의 가치를 더욱 높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대로라면 첫 번째 FA를 선언했을 때 받았던 ‘2년간 최대 10억 원’이라는 액수는 크게 의미가 없게 된다. 13년 동안 단 한 번도 100경기 미만으로 출장해 본 일이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의 성실함에도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사실 박한이는 대학 시절부터 ‘소리 없이 강한’ 선수였다. 동국대 시절, 만 19세라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 대표팀으로 발탁되어 이병규(LG), 박재홍(당시 현대)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박찬호를 필두로 프로 선수들이 주축이 될 것이라 예상했던 것도 잠시, 박한이 외에도 강혁(당시 현대전자), 신명철(당시 연세대), 김병현(당시 성균관대) 등 아마추어 야구 선수들도 두각을 나타내며 당시 ‘드림팀 1’의 선전을 이끈 바 있다. 그것이 벌써 15년 전 일이다.
당시 대학생 신분이었던 선수들이 세삼 거론되는 것은 방콕 아시안게임에서의 선전을 바탕으로 대부분 프로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다만, 유독 박한이의 이름이 거론되지 못했던 것은 그가 그만큼 ‘소리 소문 없이’ 꾸준한 활약을 펼쳤기 때문이었다. FA를 선언했던 2009시즌 직후에도 사실 그는 2년 연속 3할 타율을 기록하는 등 준수한 성적을 거둔 직후였다. 다만, 그의 큰 불운은 당시 FA 시장이 너무 꽁꽁 얼어붙었다는 데에 있었다.
물론 그가 삼성을 떠날 가능성은 그다지 커보이지 않는다. 오승환의 해외 진출을 적극 지원하기로 한 삼성 입장만 놓고 본다면, 선수 한 명이 아쉬울 시기에 ‘한국시리즈 MVP’를 놓치는 실수를 범하는 것도 사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변수는 그가 시장에 직접 나올 경우 수령할 수 있는 금액이 기대 이상으로 클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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