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두산으로서 한국시리즈 4차전은 나머지 경기 향방을 가늠할 수 있게 될 중요한 일전이었다. 이미 이원석이 부상으로 3차전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데 이어 오재원마저 부상으로 이탈하며 내야 라인의 재정비가 불가피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김진욱 감독은 차선책으로 유격수 자원이었던 허경민(3루수)과 김재호(2루수)를 동시에 투입하는 승부수를 띄었고, 이 도박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두산의 내야 라인은 수비에서 주춤한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예상을 보기 좋게 깨고 무실책으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오히려 기록상으로는 삼성이 한 개의 실책을 기록하면서 수비에서도 두산에 참패하는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경기당 1.75점의 그늘, ‘삼성의 현주소 반영’
두산의 승리가 더욱 대단한 것은 주전 야수들 중 몸이 성한 이들이 거의 없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톱타자 이종욱을 비롯하여 전날 홈런포를 기록한 홍성흔, 포수 최재훈 모두 준플레이오프에서부터 시작하여 한국시리즈까지 쉼 없는 일정을 소화하면서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려야 했다. 김현수 역시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경기를 치른 탓에 제 스윙을 하지 못하고 있다. ‘성치 않은 몸’을 지닌 이들이 한국시리즈 우승 하나만을 바라보고 ‘곰’과 같은 근성으로 매 경기를 소화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이 우승을 차지한다면, ‘부상 투혼’을 선보인 선수들에게 공을 돌려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두산이 이번 한국시리즈를 잘 소화하고 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나, ‘페넌트레이스 우승팀’ 삼성이 힘 한 번 써보지 못한 채 주저앉았다는 사실도 가벼이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한국시리즈가 두산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도 바로 이 두 가지 요소가 모두 그라운드에 드러난 데 있었다.
삼성은 정규시즌에서 팀 타율 0.283로 전체 2위의 성적을 올렸고, 팀 홈런 숫자 역시 113개로 전체 3위에 랭크되어 있었다. 47홈런을 합작한 최형우와 박석민 듀오는 가장 믿음직한 중심타자였고, 이들을 도와 정규시즌 우승을 이끈 노장 이승엽도 유독 큰 경기에 강한 스타였다. 이러했던 이들이 정작 한국시리즈에서 제 모습을 찾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경기당 평균 1.75점에 그쳤다는 사실은 꽤 충격적이다. 3차전 승리를 기록했을 때에도 삼성이 낸 점수는 고작 3점(이 중 두 점은 투수 비자책점)이었다. 정규시즌 내내 꾸준한 방망이 실력을 보여 왔던 그 삼성이 맞는가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현재 상황을 놓고 삼성의 현주소가 그대로 한국시리즈에 반영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기도 한다. 특히, 두산이 많은 경기를 치르면서 실전 감각을 유지하는 동안 삼성은 대부분 휴식 혹은 시뮬레이션 게임 등으로 긴장이 많이 풀린 상태였다. 그리고 이는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지은 팀에게는 늘 발생할 수 있는 일 중 하나였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1, 2차전 경기를 통하여 감각을 다시 키워나가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삼성의 방망이는 끝내 제 구실을 하지 못했다.
또한, 팀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해야 하는 이승엽의 존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올림픽이나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등에서 자주 극적인 장면을 연출했던 이승엽은 올해 유독 힘을 못 썼다. 특히, 자신의 국내무대 데뷔 이후 가장 낮은 타율(0.253)을 기록하며 체면을 구겨야 했다. 그리고 이승엽의 ‘예전 같지 않은’ 모습은 그대로 그라운드에 반영됐다. 특히, 2차전과 4차전에서 타점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장면은 안타깝기까지 했다.
더 심각한 것은 ‘침묵을 지키는 타선’이 이후에도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한국시리즈 5차전의 관전 포인트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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