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22(토)

야구

삼성의 패배 공식? '마무리 오승환 방치'

9회부터 연장 13회까지 던지는 동안 '타선은 꾸준히 헛 방망이'

2013-10-26 00:34

[마니아리포트 김현희 기자]지난 2001년 월드시리즈는 국내 야구팬들에게 각별한 기억을 안겨 준 한 판 승부였다. 당시 ‘핵잠수함’으로 불리며 메이저리그를 호령했던 김병현(넥센)이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일원으로 월드시리즈에 참가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상대는 아메리칸리그의 절대 강자 뉴욕 양키스였다. 당시 경기가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신-구 강자’들의 맞대결이 벌어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많은 월드시리즈 우승을 일궈낸 양키스는 말이 필요 없는 전통의 강호였고, 후발 주자인 애리조나는 기존의 ‘형님’들을 뒤로하고 당당히 네셔널리그의 신흥 강자로 떠오른 바 있다. 그리고 이 경기에서 여러 차례 극적인 장면이 연출된 가운데, 우승의 영광은 일곱 번의 경기에서 4승을 챙긴 애리조나에게 돌아갔다.

결과는 해피 앤딩으로 끝났지만, 당시 김병현은 티노 마르티네즈와 데릭 지터 등에게 홈런포를 허용하는 등 ‘큰 것 한 방’에 눈물을 보인 바 있다. 그리고 당시 김병현이 끝내기 홈런을 맞고 마운드에 주저앉는 모습이 그대로 중계 카메라에 전달되자 이를 지켜 본 많은 이들이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장면은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 양키스에 그대로 재현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대상은 올해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철옹성’ 마리아노 리베라였다. 2-1로 양키스가 앞선 가운데 9회 말 마운드에 오른 리베라는 경기를 마무리하지 못한 채 ‘애리조나의 간판’ 루이스 곤잘레스에게 끝내기타를 허용하며 눈앞에서 우승을 내어 주어야 했다.

마무리 오승환을 길게 던지도록 ‘방치’했던 삼성

결국, 양 팀 마무리 투수들 입장에서 ‘2001년 월드시리즈’는 잔혹한 기억을 남긴 경기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일이 발생할 수 있는 것도 결국 가을잔치라는 큰 무대이기 때문에 가능한 셈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주인공은 올해를 끝으로 해외 진출을 노리는 삼성의 오승환이었다.

상황은 삼성과 두산이 1-1로 맞선 9회 초 1사에서부터 시작됐다. 안지만의 투구수가 19개를 기록했던 시점에서 류중일 감독은 주저하지 않고 마무리 오승환을 마운드에 올렸다. 전날 대패한 것에 대한 충격을 잊으려는 듯, 오승환은 힘껏 공을 던졌고, 그의 투구에 두산 타자들도 좀처럼 힘을 쓰지 못했다. 결국, 삼성은 오승환의 힘을 바탕으로 9회 초 수비를 무실점으로 매조지을 수 있었다. 남은 것은 타선의 힘이 팀을 승리로 이끄는 일뿐이었다.


그러나 ‘너무 오래 쉬었던’ 삼성의 방망이는 가열될 줄 몰랐다. 9회 말 공격에서 삼성이 무득점에 그치자 오승환은 10회 초에 다시 마운드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10회에도 깔끔하게 두산 타자들을 처리하면서 담담하게 이닝을 마무리했다. 사실 마무리 투수라면 딱 여기까지만 해 주면 그만이었다. 남은 것은 타선의 예열로 경기를 끝내는 일뿐이었다. 하지만, 삼성의 방망이는 10회 말 1사 만루라는 절호의 찬스 속에서도 침묵을 유지해야 했고, 득점 실패는 결국 오승환을 무리하게 마운드에 올리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정확히 투구 수 50개가 넘어갔을 때 그는 서서히 지친 모습을 보였고, 13회 초 오재일에게 솔로 홈런을 허용하면서 패전까지 기록해야 했다. 6연속 탈삼진이라는 한국시리즈 기록도 결국 삼성의 패배 속에 묻히게 됐다.

사실 여기까지도 ‘큰 경기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마무리 투수가 긴 이닝을 소화하는 것도 포스트시즌 아니면 구경할 수 없는 ‘진풍경’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삼성 선수들의 이후 플레이 모습이었다. 홈런 한 방의 충격이 큰 탓이었는지, 이후 집중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며 스스로 경기를 포기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했다. 홈 송구 과정에서 포수가 공을 뒤로 빠뜨리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고, 자신의 정면으로 오는 강습 타구를 막지 못해 안타를 허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는 경기를 끝낼 수 있는 상황에서 마무리하지 못한 삼성의 현주소를 반영하고 있기까지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삼성이 이겼다면 오히려 더 이상했을 법했다.

삼성의 2차전 패배가 치명적인 것은 연장 13회까지 가는 총력전을 쏟아 부었음에도 불구, 끝내 1승을 챙기지 못했다는 데에 있다. ‘정규시즌 우승’에 대한 자신감을 갖는 것까지는 좋으나, 그것이 ‘자만심’이 되어 표출된다면 최악의 경우 한국시리즈가 단 네 경기 만에 끝날 수 있다. 그런 점에 있어서 삼성은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마무리 오승환을 길게 던지도록 방치한 셈이다.

[eugenephi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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