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삼성이나 두산 모두 올 시즌 한국시리즈에 임하는 각오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늘 1위를 차지할 것만 같았던 삼성은 한때 LG에게 선두를 내어 주는 등 고전 끝에 시즌 막바지에서야 한국시리즈 직행 티켓을 확보했고, 두산 역시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플레이오프 직행 티켓을 눈앞에서 놓치며 우여곡절 끝에 한국시리즈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 어느 때보다 힘겨운 시간을 보낸 만큼, 이번 한국시리즈에 대한 욕심이 상당히 클 수밖에 없다. 또한, 올 시즌 상위권 싸움의 열쇠는 LG-넥센-두산, 이른바 ‘엘넥두 서울동맹’에 있었다. 그러나 정작 선두를 수성한 이는 삼성이었다. 정규시즌 순위표에는 서울 3팀이 삼성 한 팀을 감당하지 못한 결과가 반영된 셈이었다. 이 결과가 한국시리즈에도 이어질지 역시 중요한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2002년 LG, 2013년 두산, ‘다르면서도 닮았다’
일단 객관적인 전력만 놓고 보면, 삼성이 유리하다. 특히, 일부 선수들의 이탈로도 선두를 수성했다는 점은 1990년대, 메이저리그 네셔널리그 동부지구의 ‘터줏대감’으로 군림했던 애틀란타 브레이브스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팀에는 굳이 외국인 투수가 필요 없다. 외국인 투수 못지않은 국내파 투수들이 그 자리를 훌륭하게 매워 주기 때문이다. 2011년 이후 한국시리즈 우승을 놓치고 있지 않다는 점도 삼성 선수단의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는 경험적인 요소가 되기도 한다. 정규시즌 상대 전적에서도 삼성이 두산에 9승 7패로 근소하게 앞서 있다.
그러나 사실 단기전에서 정규시즌 성적은 크게 의미가 없다. 3할 타자가 갑작스럽게 슬럼프에 빠지는 경우도 있고, 의외의 선수가 깜짝 스타로 등장하여 포스트시즌 내내 출장을 보장받는 경우도 있다. ‘멘탈이 90%’인 야구에서 오히려 장기간의 휴식을 취했다는 점은 삼성에게 독이 될 수 있다. 체력 역시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플레이오프가 네 경기 만에 종료되면서 선수들도 그만큼 휴식 여건을 보장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소 흥미로운 점은 현재 두산의 모습이 2002년 LG의 모습과 다르면서도 서로 조금씩 닮았다는 점이다. 물론 당시 LG는 말 그대로 ‘부상병동’이었다. 쓸 만한 선수들은 거의 없었고, 믿음직한 선발로 기대를 모았던 외국인 투수 라벨로 만자니오는 당시 우리나라 나이로 마흔이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선수들이 힘을 내어 팀을 한국시리즈까지 이끈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선수단 구성은 11년 전 LG와 비교했을 때 지금의 두산이 경쟁 우위를 갖는 셈이다.
그러나 시즌 4위로 시작하여 어렵게 한국시리즈에 올랐던 점, 무명에 가까웠던 선수가 큰 무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부분은 서로 닮았다. 당시에는 LG에 최동수(은퇴)가 신데렐라로 등장하여 연일 대포를 쏘아 올리는 등 ‘깜짝 활약’을 펼친 바 있다. 올해 두산은 최재훈이 양의지를 대신하여 마스크를 쓴 결과를 톡톡히 봤다. 특히,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는 9회 초 마지막 수비서 외야에서 홈 플레이트로 향하는 두 개의 송구를 정확히 포구하여 LG의 득점을 저지하는 등 맹활약을 펼친 끝에 팀 승리를 지켜낸 바 있다. 한, 둘 미더운 투수들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마운드에 등장했다는 점도 당시와 닮았다.
공교롭게도 11년 전 LG를 만난 삼성은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그런데 올해에도 한국시리즈에 먼저 삼성이 올라와 있고, 그 상대팀은 똑같은 연고지를 사용하는 두산이다. 이 미묘한 인연이 어떻게 그라운드에 나타날지 지켜보는 것도 자못 흥미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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