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례로 메이저리그에서 한때 ‘특급 마무리 투수’로 손꼽혔던 미치 윌리엄스는 필라델피아 필리스 소속이었던 1993년에 개인 최다인 43세이브를 올리며 팀을 월드시리즈에 이끌었지만, 마지막 경기에서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간판 타자 조 카터에게 역전 3점 홈런을 허용한 바 있다. 그리고 이 한 방에 대한 후유증은 상당히 컸다. 월드시리즈 우승을 내어 준 것은 뒤로하더라도 이후 그의 커리어에서 6세이브를 추가한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100마일에 가까운 속구를 보여 주었던 그가 서른둘의 나이에 은퇴를 선언했던 것도 ‘역전 홈런’에 대한 트라우마가 끝내 그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두산 마운드, ‘트라우마의 늪’에서 못 벗어나나
그러나 같은 상황을 경험했어도 이듬해에 전혀 다른 결과를 얻은 이도 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애리조나 시절의 김병현(넥센)이다. 김병현은 2001시즌 월드 시리즈에서 뉴욕 양키스의 스캇 브로셔스와 데릭 지터에게 연속 홈런을 허용하며 팀의 첫 우승을 지키지 못할 뻔한 위기를 맞은 바 있다. 그러나 그는 이듬해 36세이브를 기록하며 네셔널리그의 가장 든든한 마무리 투수로 거듭났다. 같은 경험을 해도 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의 여부는 결국 개인의 몫인 셈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 유독 두산은 ‘포스트시즌 마운드’에서 결정적인 장면을 연출해 낸 이들이 있어 안타까움을 더한다. 그리고 이는 한국시리즈 진출에도 우승까지 이를 수 없었던 하나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 시초는 2007년 한국시리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SK 와이번스와 외나무다리 대결을 펼쳤던 두산은 노장 김재현을 상대로 컨디션이 가장 좋은 임태훈을 마운드에 올렸다. 그러나 임태훈은 김재현에게 결정적인 홈런포를 허용하며 ‘신인왕’으로서의 체면을 구긴 바 있다. 하지만, 둘의 악연은 이듬해에도 이어졌다. 임태훈이 또 다시 김재현에게 홈런포를 허용했기 때문이다. 결국, 두 번의 만남은 SK의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어졌고, 그 기세를 탄 SK는 이듬해 플레이오프에서 다시 만난 두산에게 또 다시 승리하며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바 있다.
공교롭게도 임태훈은 SK와의 2009 플레이오프 이후로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바로 그 해에 생애 첫 두 자릿수 승수를 거두었지만, 이듬해 평균자책점 5.30을 기록하며 잠시 주춤했고, 이후 두 번 다시 예전과 같은 구위를 선보이지 못했다. 여기에 야구 외적인 일로 ‘사회면’에 이름이 거론되는 등 시련의 시기를 보내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시즌, 임태훈이 가을 잔치 엔트리에 들지 못한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임태훈이 빠져나가면서 이러한 ‘포스트시즌 트라우마’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되는 듯싶었다. 그러나 올 시즌에도 ‘포스트시즌 트라우마’는 두산 마운드를 가만두지 않았다. 이번에는 홍상삼에게 심상치 않은 기운이 흘러나왔다. 홍상삼은 이미 지난해 준플레이오프 1, 2차전에서도 피홈런 악몽에 시달리며 무너진 바 있다. 그런데 올해는 투구 내용 자체가 상당히 좋지 않았다. 구위는 좋았지만, 2차전에서 8회에만 폭투를 무려 3개나 헌납하면서 ‘포스트시즌 최대 폭투’라는 불명예 기록을 세웠기 때문이다. 홍상삼은 최근 2년간 총 108경기에 출장하여 137과 1/3이닝을 소화하는 동안 10승 6패 6세이브(31홀드)를 기록하며 단 34자책점만을 기록한바 있다(평균자책점 2.23). 공교롭게도 두산은 최근 6년간 경험했던 가을 잔치에서 가장 믿음직했던 셋업맨이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무너진 셈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넥센이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넥센 역시 준 PO 1차전에서 마무리 손승락이 투 아웃을 잘 잡아 놓고도 이원석-정수빈에게 성급하게 승부를 걸다가 동점을 허용했고, 2차전에서도 또 다시 손승락이 정수빈의 번트 타구를 악송구하는 등 팀 승리를 지켜내지 못했다. 다만, 이 장면이 크게 부각되지 못하는 것은 두산이 지닌 ‘포스트시즌 마운드 트라우마’가 너무 매섭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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