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시즌에서 정규시즌 숫자가 의미 없는 것은 구단을 둘러싼 내/외부 환경이 확실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단기전 승부인 만큼, 선발 투수 전원이 마운드에 오를 수 있고, 꾸준히 제자리를 지킨 타자가 한순간에 교체될 수도 있다. 꾸준하다가도 큰 경기에서 갑자기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는 이들도 있고, 정규 시즌 내내 벤치멤버를 전전하는 선수가 ‘의외의 복병’이 되어 경기를 뒤집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투수 운용부터 ‘선발이냐 아니냐’가 크게 의미가 없다. 이에 마운드 필두에 선 이들은 동료 투수들의 선전을 가정하여 1회부터 전력 투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기에 야구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의 ‘격이 다른’ 응원의 목소리도 선수들에게 자극제가 될 수도 있고, 오히려 위축되게 할 수도 있다.
서브웨이 시리즈의 완성, ‘제갈량 염경엽’과 ‘노숙 김진욱’의 지략싸움
2000년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는 같은 뉴욕 팀(양키스, 메츠)의 ‘서브웨이 시리즈’로 열린 바 있다. 당시 브롱크스에 위치해 있던 양키스의 ‘옛 홈구장’ 양키스타디움과 메츠의 ‘셰이 스타디움’은 지하철 한 번으로 왕복할 수 있었던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리고 13년 후, 국내에서도 서브웨이 시리즈가 열리게 됐다. 목동(넥센)과 잠실구장(두산)은 지하철 한 번 갈아타면 쉽게 왕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LG와 두산이 같은 잠실구장에서 연속 경기로 포스트시즌을 진행한 전례는 있지만, 이렇게 같은 연고의 다른 구장을 쓰는 두 구단이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렇게 ‘특별한 포스트시즌’의 완성은 결국 어떻게 전략을 세우느냐에 달렸다. 특히, 양 팀의 사령탑은 선수나 코치 시절 외에는 감독으로서 큰 무대에 서 본 경험이 거의 없다. 지난해 처음 팀을 이끈 김진욱 감독이 두산을 가을잔치로 이끈 것이 전부다. 즉, 경험적인 요소가 양 팀 사령탑이 거의 동일하다고 가정할 경우, 결국 ‘신의 한 수’라 불리는 ‘순간적인 판단력’이 누가 빠르냐가 승패와 연결될 수 있다.
‘그라운드의 제갈량’으로 평가받는 염경엽 감독은 올 시즌 처음으로 팀을 이끈 이가 맞나 싶을 만큼 과감한 작전과 적절한 선수 기용으로 팀의 호성적을 이끈 것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본인이 선수와 코치, 그리고 프런트 요원으로서 쌓은 큰 경기 경험을 어떻게 실전에서 푸느냐가 관건이다. 본인 스스로 냉정함을 잃지 않는다면, 적어도 지략싸움에서 염 감독이 패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비해 김진욱 감독은 지난해 포스트시즌 경험을 바탕으로 올해 제대로 일을 내겠다는 각오가 대단하다. 염경엽 감독과 같은 날카로움은 없지만, 삼국지에 등장하는 ‘노숙’과 비슷한 이미지로 팀을 이끌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 역시 투수코치로서 김경문 감독을 보좌하여 여러 차례 큰 무대를 경험한 바 있다. 정중동의 자세로 포스트시즌에 임하는 김 감독의 지도력이 그라운드에서 어떻게 나타날지 지켜보는 것이 자못 흥미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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