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김시진 감독에게 ‘5할 승률’은 상당히 의미가 깊다. 현대 유니콘스의 마지막을 지켰던 2007년 이후 넥센 감독을 두루 역임하면서도 단 한 번도 ‘승률 50%’의 문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 시즌 롯데 사령탑 부임 이후 처음으로 5할 승률을 넘긴 만큼, 내년 시즌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점에서 나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올 시즌에는 롯데가 많은 변수로 인하여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지만, 성적만 놓고 보면 66승 62패를 기록한 지난해 못지않기 때문이었다(2013 최종 성적 66승 58패 4무승부).
김시진 감독, 한국의 ‘벅 쇼월터’ 되나
확실한 것은 ‘사령탑으로서의 김시진’은 가을잔치 진출과 인연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단편적인 사실이 김 감독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정도는 아니었다. 현대 시절에는 팀 자체의 존립 여부를 걱정할 만큼 팀 사정이 여의치 않았고, 히어로즈 시절 역시 주축 선수들이 현금 트레이드의 형식으로 팀을 떠나는 등 내우외환에 시달렸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을 잔치 진출을 꿈꾼다는 것은 거의 사치에 가까웠다.
그러나 사실 김 감독도 여러 차례 ‘큰 무대 경험’을 한 이다. 선수 시절에는 한국시리즈에 선발로 등판하여 故 최동원과 맞대결을 펼친 일도 있고, 투수 코치 시절에는 현대 왕조의 일원으로서 김재박 전임 감독을 보좌하여 여러 차례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를 낀 경험도 있다. 물론 사령탑이 지녀야 할 능력 요소는 선수/코치 시절때와는 다르다. 하지만, 그는 어려운 팀 사정 속에서도 신예들을 중용하여 좋은 결과를 얻은 바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와 비슷한 행보를 보인 이가 메이저리그에도 있다는 사실이다. 벅 쇼월터 현 볼티모어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한때 텍사스에서 박찬호와 한솥밥을 먹으면서 유명세를 탔던 쇼월터는 ‘월드시리즈 우승’과 지독히 인연이 없었던 이였다. 하지만, 그는 뉴욕 양키스가 침체기에 빠졌던 1992년에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사령탑에 올라 팀을 포스트시즌까지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정작 양키스의 우승을 이끈 이는 쇼월터의 후임으로 부임한 조 토리 감독이었다.
이후 쇼월터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초대 사령탑으로 부임하며 창단 2년 만에 팀을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우승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다혈질적인 그는 구단 운영을 두고 제리 콜란젤로 구단주와 충돌한 끝에 다시 3년 만에 옷을 벗어야 했다. 그리고 쇼월터의 후임으로 애리조나에 입성한 밥 브렌리는 2001년 월드시리즈에서 양키스를 제치고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물론 앞선 두 번의 우승은 현직 감독들에게 영광이 돌아갔지만, 두 팀의 공통 분모에 쇼월터가 있다는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었다. 그만큼 그는 리빌딩 상황에 놓인 팀을 재건하는 데 일가견이 있었으며, 특히 박찬호와 한솥밥을 먹었던 텍사스 시절에는 제럴드 레이어드, 랜스 닉스, 케빈 멘치, 행크 블레이락, 마크 텍세이라 등을 중용하며 팀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넥센 역시 김시진 감독이 팀을 떠난 이후 염경엽 감독 체제에서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그만큼 김 감독이 ‘히어로즈의 침체기’를 함께하면서 키워 온 선수들이 빛을 발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리고 올 시즌, ‘감독으로서 첫 5할 승률’을 거둔 그가 내년에는 기존 선수들을 어떻게 추슬러 포스트시즌 진출 재도전에 나설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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