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국내 아마추어 야구 지도자들이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국제대회에서 여러 차례 좋은 성적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청소년 시절부터 국제무대 경험을 쌓은 이들은 올림픽/아시안게임 등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이기 마련인데, 이대호(오릭스), 정근우, 김광현(이상 SK), 류현진(LA 다저스), 윤석민(KIA) 등이 바로 그러한 인재들이다. 이들이 국제대회 때마다 “일본, 사실 별거 아닙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던 이유도 청소년 시절부터 그들을 이기는 데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야구, 이제는 ‘장기적인 운영’을 시작해야 할 때
사실 대한민국 청소년 야구가 국제무대에서 선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탄탄한 수비력과 빠른 발, 그리고 안정된 투수력에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간혹’ 전국무대에서 홈런포를 쏘아 올리는 거포들이 등장하여 태극마크를 달 경우 비교적 쉽게 우승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다. 이에 대표팀 정윤진 감독도 대표팀 코치로서 2008년 캐나다 대회에서 우승했던 경험을 살려 ‘수비’에 각별히 신경 쓰는 모습을 보였다. 5년 전, 오지환(LG)-김상수(삼성)-안치홍(KIA) 등 ‘유격수 3인방’을 모두 뽑아 수비에 공을 들였던 것처럼 올해에도 심우준(경기고)-임병욱(덕수고)-김태진(신일고)으로 구성된 유격수 트리오를 선발했다.
대표팀 소집 이후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프로 2군과의 경기에서 대승을 거두며 컨디션을 끌어올리기도 했다. 특히, 정윤진 감독의 의도대로 ‘수비’에서는 무실책을 선보이며 투수들이 타자들과의 승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타이완에서는 적지 않은 실책으로 ‘내주지 말아도 될 점수’를 내어주는 등 정 감독이 큰 틀에서 잡아 왔던 퍼즐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가장 자신했던 수비가 무너지면서 타력에서도 이렇다 할 활약을 선보인 선수가 거의 없었다. 그나마 김태진이 최상의 타격 컨디션을 보이며 제 몫을 다 했을 뿐이었다.
이에 대해 많은 이들은 ‘고교야구에 기본기가 사라졌다.’라며 안타까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일부 고교야구 지도자들은 눈에 보이는 성적을 내기 위해 기본기보다는 ‘잔기술’을 가르치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을 탓할 수는 없다. 학교 측에서 ‘교사 자격’으로 지도자들을 대우해 주는 곳도 사실 드물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비정규직’인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장 지도자들의 지도 방식을 바꾸게 된 결정적인 계기로 ‘주말리그제 시행’을 거론하는 이들도 있다. 한때 대한야구협회장 선거에도 나섰던 이형진 안양시 야구협회장은 “주말리그제 시행은 학생들에게 학습과 휴식여건 보장을 오히려 저해하는 인권 유린 행위다.”라며 더욱 적극적인 주장을 펼친 바 있다.
물론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현장 지도자들을 포함하여 프로 스카우트 팀도 한결같이 입을 모아 “주말리그제 시행으로 대회가 줄어 선수들의 연습량이 줄고, 눈앞에 보이는 성적에 급급한 모습만 보이게 된다.”라고 꼬집어 이야기한다. 대회가 적다 보니 다양한 선수들이 등장할 수 있는 여건도 줄어들어 ‘흙 속의 진주’를 찾기 어려워진 것도 사실이다. 프로 스카우트 팀이 가장 어려움을 토로하는 부분도 바로 이 점이다. ‘기본기’에 대한 문제도 이러한 실타레를 푸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 지원을 받는 주말리그제 시행이 당장 폐지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결국, 이를 어떻게 보완하느냐가 과제로 남게 된 셈인데, 이에 대해 대한야구협회를 필두로 ‘현장학습’을 골자로 하는 ‘수정 주말리그제’ 시행이 논의되고 있다는 사실은 꽤 흥미롭다. 경기장을 이제 ‘학습의 장소’로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제까지 ‘봉황대기 대회 부활’ 등이 근시안적인 안목에서 너무 급하게 정해졌다는 사실을 되돌아 보았을 때 이제부터라도 한국야구가 ‘장기적인 안목에 따른 운영’이 시행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이의를 제기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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