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 점에 있어서 지난 15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대통령배 전국 고교야구대회 제2경기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었다. 맞대결을 펼친 팀은 지난 3년간 전국무대에서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 못했던 전주고와 안산공고였다. 올 시즌에도 주말리그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 채 두 번의 왕중왕전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던 두 학교였다.
어린 선수들의 근성이 전국무대 첫 승을 만들다!
전력이 비슷한 팀들의 대결이 그러하듯, 양 팀은 상대에게 많은 점수를 허용하며 경기 내내 긴박한 승부를 이어갔다. 그만큼 투수들은 마운드에서 제 볼을 던지지 못했고, 결정적인 순간에 발생한 실책은 곧바로 득점으로 연결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경기는 중반까지 안산공고의 우세(10-4)로 진행됐다. 이대로 경기가 마감될 경우, 안산공고가 2년 전 같은 대회에서 전주고에 5-1 승리를 거둔 이후 두 번째로 2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주고가 6회 4점, 8회 3점을 만회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어 안산공고가 9회 초 오재호의 우익수 희생플라이로 11-9를 만들며 승기를 잡는 듯했지만, 전주고는 9회 말 마지막 공격서 임수현의 밀어내기 볼넷에 이어 상대 수비 실책을 틈타 두 점을 한꺼번에 추가하며 경기를 마무리했다. 경기 스코어 12-11이 말해주듯, 양 팀 모두 경기 끝까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승부를 펼쳤다. 근 4시간에 가까운 경기 시간으로 지칠 법했지만, 오랜만에 맞이한 본선무대 첫 승에 전주고 선수와 코칭스태프, 학부형들 모두 기쁜 얼굴로 서로 치하하면서 한동안 경기장을 빠져나가지 못했다.
사실 전주고의 ‘전국무대 본선 1승’은 상당히 오랜 만에 나온 것이라 주목할 만하다. 선수 부족으로 애를 먹었던 2010년 시즌에는 당시 사령탑을 맡고 있었던 최영상 감독이 아예 “야구를 못 한다.”라고 비명을 지를 만큼 어려운 시기를 보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당시 팀 전력의 절반을 책임졌던 주장 강태욱(현 성균관대)의 힘을 바탕으로 지방 대회에서는 나름대로 일정의 성과를 거두었지만, 그마저 떠난 2011년에는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선수 부족으로 인하여 전반기 주말리그 자체를 참가하시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한 때는 ‘전주고 야구부가 해체 절차를 밟는 것 아니냐?’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다행히 동문과 학부형의 도움으로 후반기 주말리그에 참가하면서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전북 인근에 위치한 이평중학교 야구부가 창단한 것도 전주고 야구부 선수 수급에 큰 도움이 된 것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들의 성장을 바탕으로 이번 대통령배 본선 무대에서 3년 만에 첫 승을 거두는 감격을 누릴 수 있게 됐다.
물론 그들의 ‘질주’가 계속된 것은 아니었다. 지난 17일 열린 16강전에서 ‘재간둥이’ 이국필이 버틴 공주고에 9-0, 8회 콜드게임패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객관적인 전력의 열세를 딛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 자체에는 박수를 보낼 만했다. 그래서 ‘내일의 프로야구 선수’들에게 꼴찌란 없는 법이다.
지금은 사정이 이렇다 해도 전주고 역시 한때 ‘잘 나갈 때’가 있었던 호남 지역의 복병이었다. 1985년에는 박성기(전 쌍방울)를 앞세워 황금사자기 우승을 차지한 경험도 있었고, 박경완, 박정권(이상 SK), 최경철(LG), 신승현(KIA), 신용운, 최형우(이상 삼성), 박정음(넥센) 등 프로 선수들도 적지 않게 배출했다. 그러한 만큼, 어렵게 거둔 이번 ‘1승’을 바탕으로 또 다시 ‘전주고 표 프로야구 선수’가 탄생할지 지켜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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