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회 3일째인 28일에도 제1경기부터 ‘사연이 많은 두 학교’가 맞대결을 펼치며 주목을 받기도 했다. 전라권 대표로 출전한 효천고와 ‘청룡기 최다 우승팀’ 경남고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두 학교 모두 연고지 우선 지명 대상자를 배출한 만큼, 마운드에서 두 에이스간의 맞대결을 지켜보는 것도 자못 흥미로울 수 있었다. 청룡기 대회를 앞두고 KIA가 효천의 에이스 차명진을 지명한 것을 비롯하여 롯데가 경남고 투-타 만능꾼 김유영을 선택한 바 있다. 그러나 이와는 별도로 양 팀 사령탑은 ‘청룡기’ 이야기만 나오면 할 말이 많다는 듯 지긋이 그라운드를 바라보며 옛 이야기를 풀기도 했다.
‘추억의 청룡스타’ 효천의 김수화, 경남의 이상화
2006년에는 청룡 여의주를 차지하기 위해 두 명의 ‘초고교급 투수’가 자존심 대결을 펼친 바 있다. 당시 결승에 오른 진흥고에는 4번 타자 겸 투수로 맹활약을 펼친 정영일(전 LA 에인절스)이 있었고, 경남고 역시 이상화를 비롯하여 이재곤, 신본기(이상 롯데 자이언츠)등 좋은 선수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었다. 당시 선발로 나선 이상화와 정영일은 모두 160개가 넘는 공을 던지며 연장 승부에서도 한 치의 물러남 없는 자존심 대결을 펼쳤다.
당시를 떠올린 경남고 이종운 감독은 “연장에 들어섰을 때 ‘설마 또 (정영일이) 나올까’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또 나오더라. 이후 한계 투구 수에 들어섰는데도 마운드에 오른 것을 보고 속으로 ‘그래 (박)철우 형님(당시 진흥고 감독), 누가 이기나 함 보입시더!’ 라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아련한 옛 추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결국, 이종운 감독은 지친 에이스 이상화를 내리고 사이드암 이재곤을 내세우며 승리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이 승부수는 그대로 먹혔다. 교체할 투수가 마땅치 않았던 진흥고는 정영일로 끝까지 경기를 끌고 갈 수밖에 없었고, 이를 틈타 경남고는 당시 2학년이었던 신본기의 끝내기 결승타로 ‘청룡 여의주’를 품에 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당시 주역들이 모두 프로무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던 것은 아니었다.
이에 앞서 2003년 청룡기 대회에서는 또 다른 스타가 등장하여 세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금테 안경의 에이스’, 효천고 김수화가 그 주인공이었다. 예선부터 본선무대까지 거의 매 경기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혼자서 팀을 이끈 김수화는 당시 결승에서 ‘최고의 창’으로 평가받았던 광주 동성고를 만났다.
하지만, 동성고의 날카로운 창 끝도 김수화라는 방패에 막혀 우승을 내어주는 듯싶었다. 8회까지 양 팀의 스코어는 9-2로 효천의 압도적 우세였다. 그러나 김주형(KIA 타이거즈), 강창주(전 LG 트윈스), 명정주 등을 앞세운 동성고의 저력 역시 만만치 않았다. 경기 후반, 변화구 볼 끝이 밋밋해진 김수화를 상대로 기어이 동점에 성공하더니, 연장에서 바뀐 투수 김선규(LG 트윈스)를 상대로 끝내기 역전타까지 기록하며 우승기를 차지했기 때문이었다. 당시를 떠올린 효천고 서창기 감독은 “그 때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투수가 김수화 한 명뿐이었고, 2학년인 (김)선규는 큰 경기 경험이 많지 않았다.”라며 10년 전 청룡기 결승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갔다.
또한, 이 경기를 통하여 메이저리그에서도 김수화에게 많은 관심을 표명했지만, 정작 그를 데려간 것은 5억 3천만 원의 계약금을 제시한 롯데 자이언츠였다. 이는 아직도 롯데 구단의 신인계약금 최고 금액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프로 입단 이후에는 제 모습을 찾지 못하며 한동안 재활군에 머물러야 했고, 넥센으로 트레이드된 이후에도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 못하며 쓸쓸이 그라운드를 떠나야 했다. 은퇴 이후 현재 일산에서 개인 사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ugenephil@daum.net]
<저작권자 © 마니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