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역전 투런 홈런을 허용한 이는 감독 추천 선수로 올스티전에 선발된 한회의 송창식이었다. 전반기에만 34경기에 출장하여 2승 5패 10세이브, 평균자책점 3.94를 기록한 그는 한화 투수들 중 가장 안정적인 모습을 보인 이였다. 다만, 아쉬운 점은 한화 구단의 ‘대표’로 나선 그가 ‘2013 올스타전 패전투수’로 기록됐다는 점이었다. 이는 현재 한화의 사정을 간접적으로나마 나타내 주는 것 같아 안타깝기까지 하다.
한화의 부진,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까?
2013 전반기가 끝난 현재, 한화는 74경기를 소화하는 동안 단 22승을 거두는 데 그쳤다. 신생팀 NC보다 무려 여섯 번이나 패배의 쓴맛을 보았고, 한때 3할 승률이 무너지는 등 시즌 내내 내우외환에 시달려야 했다. 한때 ‘다이너마이트 타선’을 앞세워 리그를 호령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화가 투자에 인색한 구단도 아니었다. 이미 김응룡 감독을 추대하면서 적지 않은 투자를 감행했고, 일본에서 돌아온 김태균을 다시 눌러 앉히는 데에도 인색하지 않았다. 류현진 없이 마운드 재편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의 해외 진출을 흔쾌히 허락하기도 했다. 그만큼 ‘통 큰 결정을 하는 구단’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또한, 최근 몇 년간 팀 성적 부진으로 인한 ‘반대급부’로 신인지명회의 상위라운드 지명권을 손에 넣었다. 이에 한화는 NC가 등장하기 전까지 꽤 좋은 유망주를 여럿 확보하여 타 구단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7억팔’ 유창식을 필두로 지역 내 좌완 최대어 김용주, 이영민 타격상 주인공인 하주석, ‘제2의 선동렬’로 거듭날 가능성이 큰 조지훈 등이 바로 이 시기에 한화가 지명했던 유망주들이었다. 이들이 제대로 성장해 줄 경우, 최소한 3~4년 이후 한화 사정이 그렇게 암울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이는 언제까지나 ‘현 시점’을 기준으로 바라본 모습일 뿐이다.
2005년부터 3년간 꾸준히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던 한화는 남부러울 것 없는 전력을 갖춘 팀으로 보였다. 베테랑들을 앞세웠던 2006년에는 삼성에 이어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이때부터 한화의 문제는 시작됐다. 눈에 보이는 성적이 좋아지면서 추가 전력을 보강하는 데에는 인색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한화의 입장이 잘 드러난 공간이 바로 2004년부터 열린 신인지명회의 석상에서였다. 당시 한화는 연고지 우선지명을 통하여 북일고 김창훈(현 두산)을 지명한 데 이어 2차 지명에서는 송창식과 최진행, 박노민 등 총 6명의 이름만 호명했다. 그나마 5라운드 34번째 지명을 받은 김용국이 대학행을 선택하면서 실질적으로 한화에 입단한 선수는 다섯 명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구단이 2차 지명 회의에서 자신들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권리를 행사한 것과 자못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5라운드 이후 그들이 지명할 수 있었던 후보군에는 신일고 내야수 임훈(SK), 동아대 포수 용덕한(롯데), 부천고 내야수 조평호(NC) 등이 있었다.
이듬해인 2005 신인지명회의에서는 아예 지명권 자체를 포기하는 듯한 인상을 심어줬다. 연고지 우선 지명으로 윤근영을 확보한 이후 2차 지명에서는 겨우 4명을 뽑는 데 그쳤기 때문이었다. 즉, 그들이 행사할 수 있었던 다섯 장의 지명권은 그대로 사장된 셈이었다. 4라운드 이후에도 진해수(SK), 이보근(넥센), 전유수, 박정배(이상 SK), 강병우(NC), 김회권(전 한화) 등이 있었음에도 불구, 그들은 끝내 전력 보강의 기회를 스스로 걷어찼다. 이러한 현상은 2009년 신인지명회의까지 거의 계속됐다. 이 기간 동안 한화는 2차 지명에서 단 한 번도 9라운드까지 지명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사실 ‘만약’이라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없는 사실을 가정할 때 쓰는 단어다. 그러나 ‘만약’ 한화가 승승장구했을 때 신인지명회의에서도 신진 세력을 이끄는 노력까지 게을리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한화의 고민도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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